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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미카] 페어리테일 : 스완송 #슈미카_전력 21차 전력 주제 : 자유주제 * 언젠가, 어딘가의 AU입니다. 1 그래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2 쿵, 쿵, 일정한 속도로 제 가슴께에서 울리는 소리에 신기한 듯 귀를 기울이던 미카가 여전히 재단용 초크를 손에서 놓지 못하는 슈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희고 가느다란, 길고 곧게 뻗은 손가락이 바쁘게 원단 위를 누빈다. 시계의 초침이 흘러가는 소리와 둘의 숨소리 - 아마도 그 중 하나는 아주 느리게 태엽이 풀리는 소리겠지만, 미카는 매번 그의 심장 소리와 가장 흡사한 것을 듣는 듯한 느낌을 받곤 했다 - 를 제외하면 무엇도 들리지 않는 고요한 앤틱샵의 창가로 붉게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노란색과 푸른색의 두 눈동자가 조금 전까지 제 눈을 빼닮았던 하늘을 향했다. 해넘이의 붉은색은 둘 ..
[나즈미카] 청춘유감 * 앙스타 꽃말합작 (https://henaho3.wixsite.com/collabo) 에 참여한 글입니다. 주최해주신 홍진 님, 다른 참여자분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우리는 소리도 없이 멀어졌다. 첫째로 너를 부를 말을 잃었다. 늘어난 거리만큼이나 너를 부르는 호칭도 이전보다 더 길어졌다. 내 입에서 나와서는 너에게 조금의 무게도 갖지 못할 말이었다. 내버릴 곳도 찾지 못하고 꾹꾹 눌러담은 마음은 로드샵에 진열된 사탕을 볼 때, 네가 아르바이트를 하던 교내 카페테리아 옆을 지나갈 때, 서툴러서 못내 사랑스러운 후배들과 연습을 할 때 문득 예고도 없이 쏟아졌다. 나는 너를 부르지 못해 다른 이들을 불렀다. 하지메 칭, 토모 칭, 미츠루 칭, 쿠로 칭…. 이제 너의 이름을 불렀던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네..
[레오츠카] 명명(命名) * 앙스타 꽃말합작 (https://henaho3.wixsite.com/collabo) 에 참여한 글입니다. 주최해주신 홍진 님, 다른 참여자분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사라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스오우 츠카사는 종종 길을 걷다가 멈춰서서 그런 생각을 했다. 죽은 것은 아니다. 아마도 아닐 것이다. 그 상태로 그저 사라진다는 것… 사람들의 곁에서, 세상에서, 홀연히 자취를 감춘다는 것. 차츰 느려지던 걸음이 뚝 멈춘 것은 유명 코스메틱 브랜드의 광고가 걸린 전광판 앞에서였다. '어떤 폭풍이 몰아쳐도 우아하게'. 자신의 이름을 본딴 카피와 함께 화장품 병을 들고 있는 화보 속 사람은 한때 저와 같은 유닛의 멤버였던 아라시였다. 여전히 아름다우시군요, 나루카미 선배. 누님이라고, 바꾼 지 얼마 ..
2017 글 결산 [2017 글 결산] 에리카 @es_1030x1226 너의 신은 너에게 숨을 불어넣은 순간 죽었다. 노란색과 푸른색의 두 눈동자가 아릿하게 일렁인다. 슬픔인지, 혹은 그 무엇인지 나는 읽어낼 수가 없었다. 이미 내 손을 떠나버린 인형의 일은 더 이상 내 몫일 수 없었기에. 안아줘. 그래서 나는 그 목소리를 못 들은 척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그 끝에 미세하게 서린 물기도, 나를 바라보던 눈동자 속 확고함도, 더는 내 수중(手中)의 일이 아니었다. 너는 이제 나의 인형이 아니었고, 탓에 네가 느끼는 모든 감정들은 이제 온전히 너만의 것들이었다. 너의 세계에서 나는 더 이상 모든 것을 지휘하는 조물주가 아니라 한 사람의 객체가 되어있었다. 그 사실을 인지하자 더욱, 숨을 쉬는 게 버거웠다. 이제 너와 나는 ..
[이츠키 슈] 생의 굴레 자캐코패스 100제 中 ‘ 네 존재를 알게 돼서 너무 괴로웠어 ' 본 글은 이츠키 슈 자공자수 연성으로, 단죄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자기혐오 소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불편하신 분들은 피해주시길 바랍니다. 4月 오지 않는 잠을 애써 불러들여 간신히 눈을 감은 밤이면 꼭 악몽을 꾸었다. 목을 틀어쥐고 있는 손아귀의 힘은 좀처럼 풀릴 생각을 않았고, 뜻대로 쉬어지지 않는 숨에 컥컥대며 겨우 상대의 눈을 바라볼 생각이 들었을 때는 차라리 다시 눈을 감고 싶다고 마음먹어버렸을 테다. 소매 끝부분에 달린 검은 프릴이 잘게 흔들렸다. 그 옷을 입고 있다는 건, 붉은 앞판에 검은색 초커가 달린 옷이라는 것은. "…이츠키…." 받아들일 수는 없었지만 분명 제 자신임을 의미하고 있었다. 언제가 되든 누군가에 의해 끝을..
[슈미카] 무명 : 라스트카니발 #슈미카_전력 20차 전력 주제 : 소원 * 현대 AU입니다. 君の結末が幸せになれるように 선택 받은 자. 이따금 그 말의 무게를 재어보다가 허탈한 듯 웃을 때가 있다. 거리를 돌아다니는 무의미한 속물들과, 자신과 같은 천재들을 구별지어주는 말. 때때로 높게 벽을 쳐버리는 때가 있어서, 지금 자신은 탑 아닌 탑에 갇혀 살아가고 있던가. 오히려 괴물 취급을 당할 바에야 사람의 눈길이 일체 닿을 리 없는 곳에서 지내는 편이 낫다…. 어차피 세상은 얼굴도 모르는 제가 쓴 글에 열광하며 우매하기 그지없는 잣대를 들이대고, 이해도 하지 못한 채 저희 좋을 대로 재단하고 있을 터였으니. 이츠키 슈라는 소설가는 지독한 인간 혐오가 빚어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사람이었다. 올곧고 까칠하고, 날카롭고 제 사람에게..
[슈미카] 후일담 * 카게히라 미카 생일 축하 단문 * あなたが笑うだけで、あなたと笑うだけで、他には何もいらなかった 태어나서 맹세코 그렇게 빛나는 것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집에 있는 어떤 인형의 유리안구도 그토록 반짝이지는 않았고, 그렇게 짝이 안 맞지도 않았어요. 소년이 낮은 시야를 애써 끌어올리며 건넨 말에 어른들은 그저 눈을 휘며 웃었다. 어떤 말을 해도 귀여움 받으며 넘어갈 막내의 말이었다. 그럼 그 막내 아이는 발을 동동 구르며 분명 봤다고요, 분명 거기 있었는데, 무엇이 그리 억울한지 몇 번이고 제가 본 것을 피력하려 애쓰다가 종래에는 제풀에 나가떨어지는 것이었다. 슈,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은 인형 브로치야. 누나가 상냥하게 건네는 상자를 받아들었다. 빨간색과 노란색의 리본으로 예쁘게 포장된 모양새에 한참..
[슈미카] Unbirthday #슈미카_전력 19차 전력 주제 : 선물 * 언젠가, 어딘가의 AU입니다. 그해는 꼭 하늘에서 내리는 선물이라도 되는 듯이 첫눈이 일찍 내렸다. 하늘 아래, 그러니까 땅 위에서 정작 제가 눈 녹은 물이라도 떨굴 듯 빈정 상한 얼굴로 창 밖을 내다보는 큰 키의 호리호리한 묘지기에게는 조금도 환영받지 못한 모양이었지만. 칫, 보일 듯 말 듯 얇은 입술이 움직였다. 문상이랄 것도 받지 못해 창백한 죽음의 장막 위로 을씨년스러운 기운을 한 겹 더 덮어쓴 묘지 옆에는 자그만 집 한 채가, 그러니까 묘지기의 거처가 마련되어있었다. 아마 올 겨울도 눈을 퍼부어댈 모양이지, 벌써부터 이토록 요란스러운 걸 보면. 제 생일 - 에 이어 죽은 이들이 돌아온다는 날 - 도 이미 지났으니 동네 아이들이 담력 시험을 치른다며 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