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앙스타 꽃말합작 (https://henaho3.wixsite.com/collabo) 에 참여한 글입니다. 주최해주신 홍진 님, 다른 참여자분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우리는 소리도 없이 멀어졌다.
첫째로 너를 부를 말을 잃었다. 늘어난 거리만큼이나 너를 부르는 호칭도 이전보다 더 길어졌다. 내 입에서 나와서는 너에게 조금의 무게도 갖지 못할 말이었다. 내버릴 곳도 찾지 못하고 꾹꾹 눌러담은 마음은 로드샵에 진열된 사탕을 볼 때, 네가 아르바이트를 하던 교내 카페테리아 옆을 지나갈 때, 서툴러서 못내 사랑스러운 후배들과 연습을 할 때 문득 예고도 없이 쏟아졌다. 나는 너를 부르지 못해 다른 이들을 불렀다. 하지메 칭, 토모 칭, 미츠루 칭, 쿠로 칭…. 이제 너의 이름을 불렀던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네가 좋아하던 딸기맛 사탕을 사서 한참동안 애먼 포장지를 뜯지도 못한 채 바라보고 있었다. 붉은색 사탕, 붉은색 눈. 그러고 보면 너는 보라색 사탕을 먹지 않았던가.
네 잘못이 아니야.
이유도 모른 채 울고 싶어지는 밤이면 너를 눈앞에 그려놓고 같은 말만을 되뇌었다. 네 탓이 아니야, 너는 처음부터 끝까지 착한 아이였는걸. 아니, 하기 싫다면 착한 아이 노릇 같은 건 이제 그만둬도 돼. 이제는 어리광을 받아줄 사람이 있잖아. 나는 아니지만… 나는 아니지만.
내 잘못이 아니라는 말은 끝내 하지 못했다. 숨통조차 막혔던 나는 다른 곳에서 다른 옷을 입게 된 뒤로도 솔직해지지 못했다.
너에게 죄인이고 싶지는 않아, 미카 칭. 수신인을 찾아가지 못한 편지처럼 하염없이 맴돌던 말이 고요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너와 나눌 이야기를 잃었다. 네가 무엇을 좋아했고 무엇을 할 때 가장 즐거워보였는지는 전부 기억나지만,
무엇을 가장 싫어하고 언제 혼자서 눈물을 흘리는지는 알지 못한다. 무엇을 가장 좋아하고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그 작은 머리로 어떤 세상을 그리고 있는지, 나는 하나도 알지 못한다. 아마 네가 직접 알려주기 전까지는 하나도 모르는 채로 살아가겠지. 그리고 나는 영영 너에 대해 온전히는 알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네가 바라는 건 내가 아니니까. 네가 온전히 너일 수 있는 시간들에 나와 함께일 때는 속하지 않을 테니까.
솔직해져야 해, 우리는 동료잖아.
후배들에게 조곤조곤 일러주는 고개가 무거웠다. 나는 이제 너를 만나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어디부터 어디까지 솔직해지면 좋은지. 네가 말을 걸어줬을 때는 내가 답을 해주지 못했고, 비로소 내가 말을 걸게 되었을 때는 하나부터 열까지 막막했다. 어디에서 만나서 어떤 이야기를 너에게 해야 할까. 잘 지냈어? 요즘은 어때? 얼마 전에 무대 잘 봤어. 따위의 말들을 넉살 좋게 늘어놓는 나를 상상한다. 가면을 벗으면 나는 울고 있을 거야. 그 시절의 너처럼.
내가 그랬듯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지나쳐줘.
혹은 망설임 없이 잡아뜯든가.
너와 만날 곳을 잃었다. 우리가 - 너와 내가 연습했던 곳에는 이제 내 자리가 없고, 내가 있는 곳에는 너를 위한 자리가 없다. 네가 있는 곳을 빤히 알면서도 걸음하지 못하는 것은 내가 어린 탓일 뿐. 어디에서 어떻게 만나야 하는 건지 알려줘, 그때는 어떤 이름으로 나를 부를지 미리 말해줘. 네 목소리가 들리면 곧바로 뒤를 돌아볼게. 거절 당하더라도 환하게 웃을게. 그럼 너와 나는, 우리의 청춘은 괜찮아질 수 있을까?
나는 우리의 청춘에 다 지난 유감을 보낸다. 다 지난 계절의 끄트머리를 붙들고 서서, 부르지도 못할 너의 이름을 되뇌이며 웃는다. 그 누구보다도,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웠던 네 모습을 생각하면서 눈물을 떨군다. 너는 아름다워, 이제 어떤 이름으로도 부를 수 없다면 차라리 이렇게 말할게. 무대의 조명을 받을 때면 푸르게 빛나던 깃털 같은 머리카락이, 색도 서로 다른 유리구슬을 투명하게 닦아 끼운 것만 같은 두 눈이, 나를 보며 아스라이 지어주던 미소가 그저 아름다웠다고. 그 언젠가 내가 부르는 노래에 나왔던, 천사처럼.
말이 되지 못한 감정도 행선지가 너라면 한없이 아름다울 수 있을 것만 같다.
이제서야 피어나는 너에게 때늦은 축복을 보낸다. 부르지 못한 이름은 꽃이 되고 우리의 청춘은 멈춰버린 흑백 필름. 암실의 문을 닫는 것은 너의 손, 두 번은 같지 못할 우리의 길목에서 네가 있었던 나의 봄을 추억한다.
먼저 등을 돌려줘, 나는 네가 가는 길목에 꽃을 내려놓을게. 나는 그것으로 족할 테니 네 앞으로 도착한 꽃을 들고 그저 눈부시게 웃어줘. 내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아름답게 피어나줘. 너만을 위한 궁전에서, 네 손으로 쌓아올린 그 사랑스러운 세계에서.
나는 소리도 없이 잊혔다. 우리는 기척도 없이 지난 계절을 떠나보냈다. 꽃이 피어나는, 유감의 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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