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점은 대략 돈리브미리사 이후 즈음... 로젤 밴드스토리 2부를 아직 못 읽었기 때문에 설정 붕괴, 캐릭터 붕괴 있을 수도 있습니다.
* 거의 논커플링, 조합에 가깝습니다.
사요, 기타 치는 건 즐거워?
본래 로젤리아의 연습은 일체의 타협도 허락하지 않지만, 언제부터인가 일과 끝에 카페테리아에 들르는 것은 습관처럼 굳어져버렸다. 여느 때와 다름 없었던 연습이 끝나고, 멤버들과 함께 여느 때의 장소로 걸음을 옮겼을 때 유키나가 문득 그렇게 물었다. 마주한 눈동자에서는 늘 그렇듯 올곧기 그지없는 신념만이 읽혔다. 장난이라는 걸 칠 줄도 모르고, 저를 상대로 장난이나 치고 있을 만큼 한가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미나토 유키나는, 제가 속한 밴드의 보컬은 그런 사람이었기에. 정상의 자리에 올라서기 전까지는 소꿉친구도 저를 보며 따라오는 밴드의 멤버들도 안중에 없을 사람,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 엊그제의 일 같았다. 밴드란 모두의 소리를 맞춰야만 한다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다들 그렇게 할 여건이 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사요 자신도.
히카와 사요는 크게 심호흡을 한 뒤 캐러멜 마키아토를 한 모금 마셨다. 리사가 추천해준 것이었다. 사람을 풀어지게 하는 향이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기분이다. 다시 한 번 머릿속으로 저에게 떨어진 간단한 명제를 곱씹었다. 분명, 즐겁느냐고 물었다. 유키나는 답을 독촉하지 않았다.
언니, 기타 치는 거 재밌어?
아무리 어려운 수학 문제도, 어떤 심오한 철학적 명제도 즐겁다, 소위 '룽하다'는 자신만의 언어로 잘도 번역하며 만사에 눈을 빛내는 쌍둥이 여동생을 떠올린다. 지금은 아이돌 밴드 파스텔 팔레트에서 기타를 담당하고 있는, 이름을 닮아 이미 하늘에 떠있는 태양처럼 반짝이는 그 아이가 제게 그렇게 물었을 때, 어떻게 대답했더라. 아니, 대답할 수는 있었던가.
나는 너와 달라, 히나. 억지로 쥐어짜낸 목에서는 튜닝되지 않은 기타의 줄을 튕길 때와 같은 부자연스러운 쇳소리가 났다. 그 말에 그 아이는, 저와 똑 닮은 눈동자를 빛내며, 제 머릿속에 감춘 생각쯤은 가뿐히 읽어낼 수 있다는 듯. 물론 알고 있어, 언니는 내가 아닌걸. 그래서 언니가 좋지만…. 있지, 나는 기타 치는 게 즐거워. 파스파레 멤버들도 다들 좋은 사람들이고. 아야 쨩은 조금씩 실력이 늘고 있고, 치사토 쨩이랑은 말이 잘 통해. 그리고… 한참동안 이어지던 말의 요지를 놓친 건 언제부터였을까. 결국 답은 하나였다. 내가 아닌 언니는, 나와는 다른 언니는, 기타 치는 게 아직은 즐겁지 않구나. 그런데도 놀라거나 이상하다는 기색은 찾아볼 수 없는 얼굴로, 우리도 같은 무대에서 기타 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예의 햇살 같은 웃음을 흩뿌리고는 방문을 조심히 닫고 나가버렸다. 홀로 남은 방 안에 히나가 남겨두고 간 밝은 기운이 한참동안 맴돌다가, 햇살에 춤추는 먼지처럼 조용히 가라앉았다. 아마도 언제까지나 그렇게 가라앉아갔을 것이다. 내가 따라잡을 수 없는, 그렇기에 내가 벗어날 수 없는 나의 그림자. 그 안에 잠겨서 질식하는 것만이 유일한 길인 줄 알았던 때 나타난 사람이 미나토 유키나였다. 무작정 붙잡은 손은 따스하지는 않았을지언정 굳건했다. 적어도 사사로운 감정으로, 목표를 향한 결의를 흩뜨리지는 않겠지. 유키나 역시 한때 아버지가 목표했던 무대만을 바라보며 달려가고 있었기에, 정점이라는 같은 꿈을 가진 이상 잡은 손은 놓지도 흔들리지도 않을 것만 같았다. 그런 마음으로, 하나뿐인 소꿉친구인 리사가 회유해야만 겨우 강행군에 쉼표를 찍고 - 이조차 얼마 전에 바닥을 보이긴 했지만 - 늘 열심인 데다 그토록 저를 잘 따르는 아코에게도 엄격하게 굴며 걸어온 길이 아니던가. 한데 어째서.
"미나토 씨, 어째서 그런 걸 물으시는 거죠?"
"…아, 미안해. 조금 갑작스러웠으려나."
"조금, 이 아닙니다. 로젤리아가, 제가 언제부터 취미 삼아 음악을 해왔다고…."
"……하긴 그렇네. 내가 섣불렀어, 사요."
"…."
"방금 그 말은 잊어줘. 멤버들이 돌아오면, 다시 스튜디오로 돌아가자."
타는 목에 음료를 한 입 더 넘기자 느껴지는 단맛은 이미 썩 유쾌하지 못했다. 실은 그 질문에 이토록 방황하게 되는 이유랄 것은, 단 하나뿐이었다.
답해줄 말이 없었다. 달밖에 되지 못하는 사람이, 밤의 하늘밖에는 누빌 수 없는 사람이 감히 손을 뻗어 간신히 아침 해가 떠오르는 시간을 침범하고 있는 것만 같았기에. 여유를 누릴 시간 같은 건 없었다. 주위를 둘러볼 시간 역시도 없었다. 따라잡히지 않기 위해 - 상대가 뭐든 척척 해내는 여동생이라면, 그 표현도 더없이 우스웠지만. 그래서 로젤리아가, 미나토 유키나가 편하다고 멋대로 생각해버렸는지도 모른다. 같은 목표를 갖고, 같은 곳에 올라서기 위해 모인 사람들. 즐거움 같은 건, 개인의 감정 같은 건 개입시켜서도 안되고 그렇게 할 마음도 없는.
유키나는 정말로 별 생각 없이 물은 것일 수도 있다. 그 단순한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괜한 오기가 일어서, 오후에 이어진 연습에도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다.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건지, 내가 그렇게나 흥미만을 좇아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보였던 건지. 어디에도 가 닿지 못한 말들이 마음 속 한구석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연습을 마치고 멤버들과 인사를 나눌 때도, 여느 때와 별반 다를 바 없이 조심히 들어가라며 짧게 손을 흔드는 유키나에게 이유도 모를 미움 같은 게 일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배신감과는 결이 조금 달랐다. 그렇다면 이건, 뭐라고 불러야 하지? 집으로 돌아와 기타 케이스를 내려놓은 뒤 무작정 침대에 몸을 던졌다. 히나가 돌아왔는지 가벼운 발소리가 들려왔다. 몸을 돌려누우며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휴대폰이 짧게 울었다. 유키나로부터의 문자 메시지였다.
「사요, 아까 그렇게 물어본 건…. 실례였다면 미안해. 사과할게. 실은 나도 리사에게서 얼마 전에 비슷한 말을 들어서, 사요 생각이 났어. 그뿐이야.」
「우리에게 필요 없는 건 친구놀이뿐이지, 우리의 무대를 즐기면 안된다는 방침 같은 건 없는걸. 오히려 본인들이 즐기지 못한다면, 프로로서 결격이야. 나 역시, 그동안 그 무대에 오르겠다는 마음만 있었을 뿐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으니까. 모두와… 로젤리아를 시작하고 나서, 노래하는 게 아주 조금은 즐거워졌어.」
연달아 도착하는 메시지에, 튕기듯 일어나 제대로 자리를 잡고 앉아 느리게 답장을 보냈다.
「확실히, 미나토 씨가 말씀하신 그대로에요. 아까는 제가 혼자서 너무 앞서나갔어요. 오후 연습 때도 C 파트에서 실수가 잦았습니다. 사과하죠. 그리고…. 즐기지 못한다는 법은 없다니, 참신하네요. 이마이 씨가 해낸 생각이겠지만, 미나토 씨가 받아들였다는 게 놀라워요.」
「그 정도의 실수라면 미미해서 보통 알아채지도 못할 정도였지만 말이야. 리사는… 가끔 내가 보지 못하는 부분을 들여다보곤 하니까, 그 덕택이지. 내가 리사를 믿고 있는 것도 있겠지만, 제법 좋은 이야기들뿐인 건 사요도 알고 있을 테고.」
「확실히 그렇네요. 여러모로… 저희들의 균형을 잡아주고 있죠. 그럼 저도 내일부터는, 좀 더 즐기겠습니다. 로젤리아에서 기타를 친다는 거, 실은 제법 즐거워요.」
이 말이 하고 싶었다. 그제야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가 한 번에 내쉬었다. 창 밖의 하늘은 어느새 저물어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밤이었다. 어둡지만 분명히 달이 떠있고, 찬란히 빛나는 태양이 아니더라도 달빛을 바라보는 누군가가 분명 있을 터였다. 곁에서 함께 같은 곳을 보며 나아갈 사람이, 소중한 인연이. 이제는 히나에게도 답해줄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며, 유키나에게 답신을 보냈다. 내일을 향한 기대를 품은 밤 공기가 적당히 상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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