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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커플링/슈+에이치] 텐쇼인 에이치의 세계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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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커플링 연성입니다. 슈미카, 와타에이 암시 있습니다.

* 사망 소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S#1 복도

 

슈, 걷다가 문득 싸한 느낌에 뒤를 돌면 에이치가 웃는 얼굴로 서있다. 긴가민가하는 얼굴로 바라보다가 마침내 몸을 완전히 돌려 에이치의 얼굴을 확인한다. 이상하다는 표정을 떨치지 못하는 슈에게 에이치, 한 발짝 다가선다.

 

 

에이치 뭘 그렇게 놀라니?

 여긴 네가 있을 곳이 아니지 않나.

에이치 (여유롭게 웃는 얼굴로) 여긴 학교야.

(미간 찌푸리며) 그걸 모르지는 않아. 단지 너는… (말을 고르는지 뒷말은 들리지 않는다.)

에이치 잠깐 같이 걸을까?

 (눈에 띄게 언짢은 기색) 나와 함께?

에이치 걱정 마, 길동무가 되어달라고는 하지 않을게.

(마지못한 듯 고개 끄덕.)

에이치 (손을 내밀까 망설이다가 이내 거둬들인다.) 처음이네, 이츠키 군과 나란히 걷는 거.

 

 

슈, 답이 없다. 둘의 곁으로 이따금 스쳐지나가는 학생들이 저희끼리 수군대지만 들리지 않는지 에이치, 연신 즐거운 듯 미소를 짓고 있다.

 

 

왜 돌아온 거지?

에이치 어라, 하지만 지금은 이츠키 군의 꿈 속이잖아.

(우뚝 멈춰서서 바라본다.)

에이치 네가 나를 불러낸 거야, 이츠키 군.

(갈라지는 목소리로) 내가 왜 너를, 텐쇼인.

 

 

에이치, 말없이 멈춰서서 살짝 뒤를 돈다. 복도와 계단이 있던 자리가 순식간에 무대로 변한다. 슈,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며 뒷걸음질 친다.

 

 

S#2 (旧) 발키리 무대 전경

 

에이치, 여유롭게 무대 세트로 걸어들어가 구경한다. 조명빛을 받아 머리카락이 하얗게 빛난다. 물러선 채 말없이 지켜보던 슈, 조용히 한숨을 쉰다.

 

 

S#3 (旧) 발키리 무대 (슈의 회상)

 

음향 끊어지고, 수라가 되던 공연장. 스쳐지나가는 에이치의 얼굴. '내 뜻대로 춤춰줘서 고마워' 하던 에이치 O.L.

 

 

S#4 (旧) 발키리 무대 전경/복도

 

정말로 이게 내 꿈이라고 한다면, 왜 나는 너를 불러낸 거지?

에이치 그걸 내가 알 거라고 생각하는 거니? 이츠키 군도 단순하구나… 의외로.

네게서 듣고 싶은 말은 아니다만. 구경이 끝났으면 이만 돌아가지.

에이치 (고개를 살짝 기울인다.)

…불쾌하다, 진심으로. 이곳에는 단 일 초도 더 머물고 싶지 않아.

에이치 매몰차네.

 네 덕분에 매몰차게 끊어낼 수 있게 되었지.

에이치 ….

고맙다고 해야 할까, 텐쇼인.

에이치 나는 더 이상 살아서 이츠키 군이 빛나는 걸 볼 수가 없는데, 혼자서만 나에게 감사하겠다는 거니?

달리 방법이 없지 않나.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게야.

에이치 고마웠어, 칠석의 무대.

(말을 잃은 듯 멍하니 바라본다.)

에이치 나는 모두가 가진 걸 빼앗을 줄밖에 모르는 어린 아이였는데, 그런 어린 애에게도 태양을 보여줘서 고마워. 고맙다고 전해주겠니?

와타루에게라면 이미 전했을 거라고 생각한다만.

에이치 아쉽게도 그 자리에 없었어. 아니, 다행히도, 일까…. 나는 와타루에게 내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거든.

네가 그래봤자 와타루는 전부 알고 있었을 테다.

에이치 ….

그랬기에 네 곁에 남을 수 있었겠지.

 

 

에이치, 홀린 듯이 슈를 바라본다. 할 말이 있는 듯 입술을 달싹이다가 이내 잠잠해진다. 얼핏 눈물이 맺힌 것도 같다.

 

 

카게히라가 내게 그랬듯이.

에이치 (잠깐 사이) 생각지도 못했어.

너는 그래서 한 수 아래라는 거다.

에이치 응, 역시 이츠키 군은 다르네. (잠깐 사이) 나는 정말로 생각도 못했어.

 와타루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더 슬퍼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에이치 ….

이따금 꿈에라도 다녀가도록. 더 이상 내 꿈 속에 침투하는 건 사절이지만.

에이치 그래도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나를 부른 게 아니었니?

 ….

에이치 뭐든 말해줘. 오늘이 지나면, 정말로 다시는 성가시게 하지 않을게.

 

 

슈, 심호흡을 한다. 눈앞으로 암전된 무대 오버랩되고 언젠가 그 앞에서 무릎 꿇었던 과거의 자신, 스쳐지나간다. 주마등처럼 빠르게 메트로놈, 담요, 바느질 도구와 앤틱인형 따위가 지나가고 짧은 현기증에 눈을 감았다 뜨면, 에이치, 여전히 그 자리에 서있다.

 

 

나는 너를 용서하지 않아.

에이치 바라던 바야.

 네가 누구에게도 애도 받지 못하고 생을 마쳤으면 했다.

에이치 정말로 그렇게 되었는걸.

그렇지 않다는 걸 정말로 모르는 건가, 텐쇼인 에이치.

에이치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해도 그건, (힘주어) 산 사람들의 일이니까.

(뒷말 기다리는지 조용하다.)

에이치 (언젠가처럼 환히 웃으며) 나의 죽음을 축복해줘. 너희들에게는 재앙 같았을 내 삶이 드디어 끝났으니까.

 재앙이 끝났다고 해도 삶은 끝나지 않으니까 말이다. 네가 남긴 걸 끌어안고 살아가는 것도 나의 몫이지. 다른 이들의 몫이고.

에이치 그리고 언젠가는 나를 떠올리면서 악의 없이 웃게 되는 날도 올까?

답지 않은 감상이구나. 내게서 그런 걸 바라지는 말라는 게야.

에이치 이츠키 군에게는 물론 바란 적 없어. (사이) 바랄 자격도 없고.

(별일이라는 듯 바라본다.)

에이치 이 무대는 결국 나의 추억이었나 보네. 미안해, 이츠키 군의 꿈 속에서마저 내 뜻대로 움직여서.

이제 나는 실 같은 게 없이도 거뜬히 살아갈 수 있으니 괜찮다.

에이치 정말로 좋았어, 이곳이. (사이) 잠깐이나마 행복했어.

 내 손으로 이곳에 묻힌 나만큼은 아닐 테지.

에이치 ….

 내 할 말은 여기까지다. 이만 갈까. 갈 길이 멀지 않나.

에이치 응, 그렇게 할까.

행복했나?

에이치 응?

행복했느냐고 물었다만. 이런 걸 물으니 내가 꼭 저승사자라도 된 기분이라, 썩 유쾌하지는 않군.

에이치 덕분에.

(여전하다는 눈빛)

에이치 …라고 와타루에게 전해주면 고맙겠어.

 말했듯이 그런 건 직접 하도록. 나와 와타루는 세상에 존재하는 진기한 예술품을 감상하고 토론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니까 말이지.

에이치 꼭 다녀가야겠네. 와타루의 슬퍼하는 모습도 보고 싶은걸. 참, 이츠키 군. 이런 거 이뤄진다는 법은 없지만.

 (바라본다.)

에이치 내가 말을 전해줬으면 하는 사람이라도, 없을까? 그러니까, 천국에 있는. 아, 나는 츠키나가 군이 말한 천사는 되지 못했으니까 무리일지도.

(잠깐 생각하는가 싶더니 이내 고개 내젓는다.) 그런 건 되었다. 이미 전부 전했으니까.

에이치 그럼 다행이고.

 (순간 진심으로 홀가분하게 웃는다.) 돌아갈 시간이다.

에이치 (사이, 웃는 얼굴로) 응.

 

 

두 사람, 나란히 등을 돌려 걸어가기 시작한다. 무대 배경 차츰 이지러지며 복도로 변한다. 에이치, 문득 걸음 멈추더니 슈에게 손 내민다. 슈, 망설임 없이 맞잡는다.

 

 

에이치 잘 지내, 이츠키 군. 그리고 모두들.

…편히 가거라.

에이치 덕분에.

 가능한 한 오랫동안 기억하마.

에이치 고마워. (사이, 잡은 손 놓으며) 잘 있어.

 

 

슈, 말없이 손 흔든다. 에이치, 뒤를 돌아 천천히 사라진다. 그 모습 위로 유닛복 입고 천사처럼 웃던 모습 O.L. 슈, 한참동안 에이치가 사라진 자리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S#5 슈의 방

 

아침. 창문으로 햇살 쏟아지고 자명종 울린다. 방 밖에서 미카 목소리 드문드문 들리고, 슈, 천천히 눈 뜬다. 손 뻗어 자명종 끈 뒤에도 한참 멍하게 누워있다.

 

 

 (혼잣말처럼) 텐쇼인 에이치.

 

 

허무한 듯하나 무엇이 슬픈지 모르겠다는 얼굴 위로 눈물 한 줄기 흐른다. 침대 옆 사이드테이블 클로즈업되면, 언제 어디서 들어왔는지 모를 하얀 깃털 하나 놓여있다. 슈, 차츰 F.O.되면서 미카, 경쾌하게 문 열고 들어온다.

 

 

 

_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