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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투여휘] 별의 잔존율

* 앙투아네트X여지휘사 연성입니다. 지휘사를 플레이어가 아닌 하나의 캐릭터로 해석했습니다.

* 인게임 루트 [검푸른 별], [희생의 의미] 스포일러 있습니다.



 다음 번에는, 함께 별을 보러 가고 싶어요.
 접경도시에서의 마지막 하루를 앞두고 기묘한 빛깔로 물들어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평생에 걸쳐 수없이 많은 황혼을 봐왔을 터인데, 그 중 어느 하나와도 닮지 않은, 참으로 기이한 일몰이었다. 어쩌면 수많은 것들과 꼭 빼닮았든가.

 다음 번. 무엇을 믿고 그렇게 말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발화자인 내 자신이 알지 못했으니 내 옆에 있었던 앙투아네트 역시 - 그 말의 뜻 같은 건 몰랐을 터인데, 머쓱한 마음에 옆을 돌아보았을 때 마주한 그녀의 눈은 언제나처럼 따스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다 알아요. 꼭 그렇게 말하듯이. 하지만 매번 중요한 것은 스스로 놓쳐버리고 마는 그 손을 나는 꼭 맞잡는다.


 "앙투아네트, 제 말 들었어요?"
 "물론이에요, 지휘사. 저는 늘 당신의 말을 듣고 있답니다."


 도시의 심장과도 같은 이곳, 중앙청에 위치한 그녀의 사무실에도 참 쉬지 않고 드나들었었다. 잘은 기억 나지 않지만 우리 - 나와 그녀가 함께 바라본 종말은 이미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겠지. 그러니까 지나간 그 시간에 내가 전한 말들을 지금의 당신이 기억해준다면 기쁠 텐데. 오늘은 별이 뜨지 않을 것 같아요. 앙투아네트는 내 말에 대답하는 대신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하늘에 거대한 흑문이 열려서든, 우리의 도시가 멸망을 앞두고 있어서든, 그도 아니면 모퉁이를 돌자마자 당신이 죽음을 맞이할 운명이어서든. 나는 이유에 대해 침묵한다. 서늘한 색채를 뿜어내는 하늘을 바라보는 대신 머지않아 별이 되어 스러질 당신에게 시선을 고정한다.


 "앙투아네트는 신기사가 된 걸 후회하지 않나요?"
 "후후, 저를 인터뷰하고 싶은 건가요? 후회라는 건 미련의 다른 말인걸요. 저는 미련이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으니, 제가 걸어온 길에 후회하지 않는답니다."
 "하지만, 당신도… 당신도 사람이잖아요. 좀 더 행복해지고 싶지 않아요? 설령 앙투아네트가 이룬 평화 위에서 모두가 웃으며 살아가는 날이 온다고 해도, 서서히 앙투아네트는 잊혀갈 텐데?"
 "그래도 지휘사가 있는걸요?"
 "…."
 "지휘사는 저를 잊지 않을 거잖아요. 틀렸나요?"


 마지막까지도 힘겹게 균형을 맞추려고 흔들리던 저울이 마침내 한쪽으로 기우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도 세계의 압승. 심장이 바닥 없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어쩌면 처음부터 승패는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한갓 인간 - 설령 '사랑' 받은 인간이라 할지라도 - 이 하나의 세계에 필적하려 하다니. 한참 멍하니 앙투아네트의 얼굴을 바라보던 나는 느리게 입을 열었다.


 "…잊지 않을게요."
 "고마워요, 지휘사."
 "고맙다는 말은 오히려 제가 해야 하는걸요."


 무력한 인간에 불과한 나는, 당신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해야 하지만. 그래도 다시 나에게 주어지는 기회가 있음에, 당신이 내 손을 잡아주리라는 희망에 걸어볼 또 다른 일주일이 있다는 것에. 오늘은 같이 들어갈까요? 흑문이 퍼져서 위험하니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고개를 끄덕였는지 어느 틈엔가 그녀의 방주에 나란히 타고 있었다.


 "앙투아네트가 운전하는 차를, 타보고 싶었어요."
 "어머, 그래요? 그러고 보니 운전을 한 지도 꽤 되었네요. 그래도, 방주를 타는 것도 나름 진귀한 경험이랍니다. 지휘사."
 "물론 알아요. 그리고… 저는 앙투아네트와 함께 고서점에도 가보고 싶었어요. 좋아한다던 시집이랑 비슷한 분위기의 책을 찾을지도 모르니까…."
 "기억해주셨군요."
 "무엇이든요."


 그리고 무엇이 되었든 기억할 거에요, 앞으로도. 속으로 그렇게 되뇌이는 동안 거짓말처럼 방주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지휘사.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그녀에게 용기 내어 말을 걸었다. 여태껏 거쳐온 어떤 시공의 나도 하지 않았던 말.


 "앙투아네트, 내 이름 알고 있죠?"
 "…."
 "마지막 날이니까, 한 번만 불러주면 안돼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내가, 그때도 당신을 찾아올 수 있게.





 거대한 흑문 사건 이후, 기념 공원이 된 중앙청의 옥상에서는 유난히 별이 잘 보였다. 천사라고 불리던 중앙청의 중심 신기사가 스스로를 희생한 뒤, 이전처럼 사람들의 평범한 웃음 소리가 넘쳐 흐르기 시작한 지금의 접경도시라면 그녀에게 보여주어도 손색이 없을 것만 같다. 사건이 있은 직후에는 앙투아네트의 집무실에서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으나 이제는 업무가 빌 때면 곧잘 밖을 구경하곤 한다. 길가에 피어난 꽃, 아이들의 새하얀 웃음, 밤하늘의 별빛…. 그 모든 것들을 가능한 한 눈에 새기려고.


 "지휘사, 오늘도 여기 있었군."
 "…아, 안화 씨! 퇴근 안 하세요?"
 "이제 막 돌아가려는 참이다. 너도 슬슬 퇴근해."
 "네, 그래야겠어요."
 "날마다 보는 별인데, 질리지도 않는 모양이지."


 안화 씨처럼 머리 좋은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깊은 곳까지 들여다 보려면 거의 평생이 걸리는 것도 있는 법이라고요. 별도 그 중 하나고, 저는 앙투아네트랑 약속했으니까. 그녀의 이름에 조금은 씁쓸하게 웃으면서도 너무 늦지 않게 돌아가라며 걸음을 옮기는 그의 뒷모습을 잠깐 바라보다가, 이내 쏟아질 듯한 별빛을 향해 도로 고개를 돌렸다. 다음 번에는 같이 별을 보러 가기로 약속했으니까. 어디에 어떤 별이 있는지, 어느 계절에는 어떤 별자리가 보이는지 전부 외워두려면 한참 멀었지만, 그래도. 그래도 우리에게는 아직 시간이 있겠죠. 저 별보다도 무수한 기회들이 내 손바닥에서 빛나고 있는 한은. 나의 별, 나의 천사, 나의 앙투아네트…. 신께서 다시 시계의 태엽을 감아준다면.

 그때 나는 당신을 다시 만나러 갈게요. 몇 번이라도 다시 웃기 위해, 똑같은 나날 위로 결코 같지 않은 발자국을 남기기 위해. 그리하여 언젠가는 당신을 구할 수 있을 만큼 강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그때도 다시 말할게요. 나의 앙투아네트, 당신과 함께 별을 보러 가고 싶다고.


 그리고 나의 세계는, 모두와 함께 행복해질 당신을 보기 위해 또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간다. 단 한 번 불리운 이름의 파동을 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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