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미카_전력
18차 전력 주제 : 성장
君が残したもの
카게히라 미카가 사라졌다. 그가 사라진 뒤 자연히 주변인들의 시선은 늘 그 아이와 함께였던 이츠키 슈에게로 쏠렸다. 괜찮냐는 염려 섞인 목소리가 태반이었고, 이러다가 그마저 어디로 가버리는 건 아닐까 수군대는 소리도 높아만 가고 있었다.
슈, 그 아이는 어디로 가버린 거죠?
사망도 아니었고, 사고랄 것도 없었다. 그저 사라졌을 뿐이다. 학교에서, 교실의 자리에서, 슈와 함께 지내던 집에서, 자신의 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카페에서, 무대에서, 세상에서. 주변인들이 슈에게 그의 행방을 묻자 돌아온 것은 생판 다른 나라의 말이라도 들은 듯,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한 시선이었다. 미카 칭, 카게히라, 미카 쨩, 카게히라 님, 미카 군, 발키리의 그 아이…. 그 수많은 호칭을 들으면서도 슈는 울지도 웃지도 않았다. 그저 타인의 이야기인 것만 같았다. 다른 우주에 살고 있는, 만난 적도 만날 일도 없는. 누구인지도 알지 못해서 전해줄 감정도, 안부를 묻는 말에 답해줄 말도 찾을 수 없는, 가장 가까이에 살아 숨쉬었던 연인에 대해 이츠키는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고장이 났다. 걱정스런 얼굴로 자신을 찾아온 와타루에게 나즈나는 그렇게 말했다. 쉼없이 세상은 사랑과 놀라움의 연속이라 외치던 그로서도 함께 사랑을 노래할 값진 동료였던 슈의 급작스런 변화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으리라. 나즈나는 짧아진 오른쪽 머리카락을 만지작대며 어색하게 웃었다.
나도 이렇게밖에는 말해주지 못해서 아쉽지만 말이야…. 이츠키, 정말로 고장난 것만 같은걸. 카게히라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눈치야. 단순히 모르는 척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잊어버린 것만 같아.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그렇게 사랑했던 사람을 하루 아침에 잊는다는 게? 그 사랑 넘치는 슈가 말이죠. 그러게, 나도 정말 놀라워. 그래서 더 그 말만큼 잘 어울리는 게 없단 말이지. 고장이 났다면 어떤 일이든 가능하지 않을까? 아, 이런. 인형사가, 이 세계의 신이 고장나버리면 그 실은 누가 갈아줘야 하죠? 글쎄, 그걸 나에게 물어봤자…. 머쓱한 눈치로 나즈나가 어깨를 으쓱했다. 정말로 모를 일이었다.
다들 왜 그렇게 내게서 카게히라라는 사람을 찾아대는 게야.
수예부실에서 한참 말없이 바늘을 놀리던 슈가 한숨처럼 한 마디를 뱉었다. 그야 슈 군은 미카 군을… 곁에서 보태려던 츠무기가 쿠로에게 제지당해 짐짓 입을 다물었다. 내가 그 사람을 사랑했나? 그제야 츠무기는 모든 의문이 해소된 얼굴로 웃었다. 네, 바로 그거에요. 사랑했는걸요. 그 말을 들었을 때 미카 군이 얼마나 환하게 웃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건가요?
공교롭게도 그런 기억은 없었다.
이츠키 슈는 아이돌이다. 세간과 주변에서는 고등학교에 매여있기에는 아까울 정도라든가, 차라리 예술가라고 부르는 게 낫겠다는 말이 나올 만큼 완벽을 기한 무대를 선보이는 그였으나, 그는 이상할 만큼 아이돌의 칭호를 고수했다. 유메노사키의 제왕, 누구도 넘보지 못할 탑 아이돌. 그 자리를 되찾은 건, 아니, 함께 만들어나간 건 다름아닌 그 아이였다. 나츠메가 틀어준 발키리의 무대 영상을 보면서 슈는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저와 단 둘만으로 무대를 집어삼킬 듯 강렬하게 채워나가는 미지의 존재에게 고정된 시선이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가 제 품에서 활처럼 몸을 뒤로 휘고, 저와 손을 잡고 스텝을 맞춰나가고, 제 앞에서 선율을 주도하는 걸 가만히 지켜보면서도, 그 흔한 피드백 한 마디가 없었다. 그 무렵 슈의 주변인들은 쓰라린 마음으로 인정했다.
사라져버렸다. 슈의 예술이, 그가 이때껏 아이돌로서 쌓아온 모든 것들이. 어쩌면 카게히라 미카, 그 아이와 함께, 흔적도 없이. 그는 박자조차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 자주 듣던 바그너의 악보를 가져다줘도, 수예부실에 비치되어있던 담요를 둘러줘도 멍한 눈으로 일정 지점을 응시하고 있기 마련이었다. 아니, 그건 차라리 아무것도 담고 있지 않은 눈이었다. 더 이상 태울 것을 찾지 못한 불꽃처럼, 옆에서 아무리 장작이 될 만한 것들을 구해와도 더는 타오르지 못했다. 혼자서는 스텝도 밟지 못했고, 늘 다투기 일쑤였던 친우가 직접 쓴 악보를 가지고 와서는 눈앞에 부려놓으며 가사를 붙여달라고 하면 난생 처음 듣는 단어들의 조합이라는 듯 그저 눈을 들어 한참동안 바라볼 따름이었다. 가사는 원래 세나가 쓰지만, 오늘만 특별히 너에게 부탁하는 거라고 애원에 가깝게 말했을 때에도 돌아오는 반응은 변함없었다.
이것으로, 정말 모든 게 죽어버린 것만 같았다.
이럴 수가, 슈…. 정말 이 부분의 안무가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인가요? 당신이 몇 번이고 연습하면서 파랑새 씨에게도 알려주었던, 당신 손으로 만들어낸 이 안무가요? 나는 모르겠다는 게야, 와타루. 파랑새라는 게 누구인지도 모르겠고… 아, 이 이야기는 이쯤 하지. 머리가 아프군. 슈, 저는 정말로 상심했습니다. 예술의 전령인 당신이 이렇게 주저앉을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당신을 짓밟으려 했던 에이치라 해도 슬퍼하겠군요. 아기토끼 씨의 말이 맞았나 봅니다. 당신은 고장났어요.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제 눈으로 확인한 이상 믿지 않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
일전 같았더라면 불 같이 화를 냈을 그 말에도, 아니, 애초에 제 앞에서 와타루가 꺼낼 일도 없었을 그 말에도 그는 놀랍도록 반응이 없었다. 그저 고장이 났다는 말의 어감을 한참 입 안에서 곱씹다가, 숨처럼 친우의 이름을 불렀다. 닮은 듯 다른 보라색 눈동자가 오롯이 그를 담았다.
누군가가… 기억나지 않아. 누가 말인가요? 그걸 알았더라면 내가 이렇게 말하지 않았겠지. 아, 기억이 나지 않는군. 나와 같은 무대에 섰었고, 나를, 아니, 내가… 그래, 분명 내가 사랑했던 사람일 터인데. 마드모아젤은 아니다. 니토? 니토도 아니야. 그것과는 분명 다른 층위의 감정이었어. 단순한 스탕달 신드롬과 진정한 사랑마저 구별해내지 못할 만큼 나는 망가지지 않았다는 게야. 분명 니토보다는 길고, 마드모아젤보다는 짧은…
내가 구원받고 싶을 때면 불렀던 그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와타루. 기억을 잃어버리고 처음으로 슈는 소리내어 울었다. 그날 집에 돌아와서, 마구잡이로 뒤지던 책상 서랍에서 처음 보는 노트 한 권을 찾았다. 험하게 다뤘는지 귀퉁이는 성한 곳이 없었으나, 그걸 또 정성스레 테이프로 메꿔놓은 모양새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그나저나, 이런 게 왜 여기에. 이름이라도 적혀있지 않은가 싶은 생각에 이리저리 들춰보던 그의 눈에 문득 제 글씨체가 들어왔다. 影片. 반듯하게 적혀있는 두 글자는 제가 썼을 것이 분명했다. 손 끝으로 글자를 쓸며 무심코 소리내어 읽었다. 카게, 히라. 그림자의 조각, 영, 편, 카게히라, 카게히라…. 분명 성씨일 터였으나 이 뒤에 올 이름은 생각이 날 것 같으면서도 손이 닿지 않았다. 와타루, 나츠메, 아오바, 키류, 니토. 그러고 보니 카게히라라고 했었지. 내가 사랑했던 사람은 그런 성씨를 갖고 있었더랬지. 순간적으로 숨이 턱 막혔다. 이유도 모른 채 울고 싶었다. 내가 울고 있을 때 나를 끌어안고 달래주었던 게 그 사람이었다면, 모든 건 금방 지나갈 거라며 위로해주었던 것도 그였다면. 같은 무대에서 같은 순간을 공유하고 내 앞에서 있는 힘껏 노래하던 그를 내가 사랑했다면. 나 역시 그에게서 사랑받고 있었던 거라면.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어디에서 사라져버린 것들을 찾아야 하는 거지.
그날 이후 슈는 조금씩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초부터 춤을 가르쳐주던 와타루가 지쳐 나가떨어지도록, 노래의 음정을 잡아주며 함께 연습하던 나츠메가 목이 쉬도록, 지나간 이야기를 해주던 츠무기가 이만 수예에 집중해주지 않겠냐고 묻도록. 지치지도 않는지 매사에 최선을 다했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아직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그 사람은, 그 아이는, 왠지 이런 저의 모습을 사랑했을 것 같아서. 무대 위에서 그토록 행복한 표정을 지었던 것으로 보아 틀림없으리라. 그는 금세 이전의 페이스를 되찾아 작곡 내기를 제안했던 레오의 앞에 의기양양한 얼굴로 새 악보를 들이밀었다. 안무도 구상했다. 원단을 구하기 위해 발품을 팔았고 활기를 찾은 연습실에서는 메트로놈 소리가 끊일 줄을 몰랐다. 잘은 모르겠지만 가장 아름답고 완벽한 것을 만들자. 잘은 모르겠지만 그 아이가 웃어줄 만큼 나다운 무대를 꾸미고 말겠노라고. 제왕은 되살아났다. 모두가 그렇게 말했다. 나즈나는 진심으로 기뻐했으며 객석에서 지켜보던 와타루는 결국 눈물을 흘렸다. 결국 사랑이 해낸 셈이라고, 그를 움직인 건 다른 어떤 것도 아닌 그 아이를 향한 마음뿐이었기에. 비로소 모든 게 완벽했다. 아마도 가장 기뻐해줄 사람은 없었지만.
칠 월의 무대를 마치고 내려온 그 아이도 이렇게 웃었을까. 웃는 얼굴로 저를 반기는 이들의 얼굴을 찬찬히 둘러보았으나 닮았다고 생각되는 것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어째서, 니토가 떠난 뒤에도 나는 분명 여기까지 왔을 터인데. 대체품을 찾을 수 없으리라 여겼던 이가 떠났을 때는 정작 눈부시게 일어서놓고, 제가 - 언젠가 - 그토록 모질게 대했던 사람의 빈 자리를 어찌하지 못해 발버둥치는 모양새란. 어떻게 해도 그 아이처럼 웃는 얼굴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당장 그와 닮은 인형의 파츠라도 사서 구현하고 싶을 정도로 절실한데도, 찾을 수가 없었다. 텅 비어버린 심장 근처로 찬 바람이 드나들었다. 문득 견딜 수 없어져서 백스테이지로 내려온 슈는 곧장 대기실로 향했다. 문을 걸어잠그고 한참동안 울었다. 보고 싶다, 되찾고 싶다, 기억하고 싶다. 결국 전부 같은 말이었다.
보고 싶다, 카게히라.
마침내 손이 닿은 이름은 끌어안기에는 너무도 버거웠으나 결코 놓고 싶지 않았다. 있는 힘을 다해 머릿속에 새기고, 하루에도 수십 번 소리내어 불렀다. 사랑하고 있었다. 사랑하고 싶었다. 저를 이곳까지 이끌어준 이를, 결국에는 제 세계의 전부가 되어버린 사랑스러운 이를.
슈는 평소에도 사랑이 깊었으니까요. 결국 다시 일어나기로 한 것도 사랑하는 이의 공적이니, 감사해야 하는 거겠죠. 파랑새 씨가 보았더라면 정말로 기뻐했을 것을. 하긴, 그 아이는 파랑새라기보다 까마귀에 가까웠던가요. 와타루, 작업 중이라는 거다. 슈 형 오랜만에 집중하고 있으니까 조용히 해주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소리 죽여 오가는 말소리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다들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모두들 이렇게나 기뻐할 정도라면 너도 분명 기쁘지 않을까. 부탁이니 한 번만 나를 향해 웃어주지 않겠어? 행선지를 찾아가지 못한 말머리가 펜 끝에서 만들어지는 선율 위로 스며들었다. 얼핏 눈물 같은 것도 함께였다.
그리고 다시 아침이었다. 잠에서 깨어난 이츠키 슈는 순간 파드득 놀라며 옆으로 눈을 돌렸다. 언제나처럼 같은 자리에, 흡사 천사라 해도 믿을 듯한 모습으로 잠들어있는 그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숨을 흡 들이켰다. 눈을 한 번 꾹 감았다가 떴으나 눈앞의 광경은 그대로였다. 손을 뻗어 스치듯이 뺨을 쓰다듬고는, 깨지 않도록 조심히 품에 안았다. 카게히라, 미카. 아무런 문제 없이 제 입에서 흘러나오는 이름이 낯설기는커녕 다행스러워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다. 기억하고 있었다. 너 역시 나를 떠나지 않아주었구나. 이런 나인데도. 일정한 속도로 등을 다독이는 손길을 느꼈는지 미카가 부스스 눈을 떴다. 노란색과 푸른색의, 색도 서로 다른 두 눈동자가 해사하게 휘어지며 웃는다.
그러니까 이 얼굴이었다. 슈는 무심코 그 이마에 입술을 내렸다. 결코 두 번 다시는, 꿈에도 잊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끌어안은 팔에 힘을 실었다. 좋은 아침, 스승님. 짤막한 인사가 한없이 사랑스럽다. 꿈이 아닌 세계에서는 망각 대신 잊지 못할 추억을 안겨줄 모양이었다. 제 품을 파고드는 연인을 힘껏 끌어안은 채, 몇 번이고 첫눈 같은 입맞춤을 내리면서. 그림자의 이름을 가지고도 가장 환한 빛으로 나에게 온 너를 언제까지라도 사랑하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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