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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ece

[와타에이] 화무십일홍

폐하, 당신도 눈물이라는 걸 흘릴 줄 아는 사람이었군요. 한 순간 자취를 감췄던 광대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눈앞으로 돌아와 저만을 위해 웃고 있었다. 늘 쓰고 있던 가면을 벗고 맨얼굴을 드러낸 채였다.


와타루, 나는 뭘 잘못한 걸까?


차라리 절규에 가까운 한 마디가 떨어지자 그의 광대는 잠깐 고개를 기울이더니 이내 바람새는 소리로 웃고, 정중하게 한쪽 무릎을 꿇어보인 뒤 장갑 낀 손을 내밀었다. 언제나처럼 하얀 손이 그 위로 겹쳐졌다.


당신에게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
아름답게 피어난 장미꽃에게 죄를 물어보십시오.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아아, 비유가 틀렸어. 와타루.
….


그건 아름답다는 죄목이잖아? 영원하지도 못할 주제에, 애꿎은 사람이나 홀려버릴 미혹의 죄. 푸른 눈동자가 넘실대며 웃었다. 바로 자신의 이야기인 줄도 모르고 무엇이 그리 즐거울까, 당신은. 광대가 반대쪽 손을 들어올려 황제의 손을 가만히 감쌌다.
당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아름다운 주제에, 이미 모든 것을 손에 넣은 주제에, 더 무엇을 탐하고 더 무엇을 없애겠다고. 왜, 도대체 왜. 등 뒤로 무심히 흘러가는 초침의 소리를 들으며 광대는 시간의 흐름 하나 멈추지 못하는 스스로를 책망했다. 나는 일생을 바쳐 섬겼던 황제 하나도 똑바로 구해내지 못하는 무능한 광대, 당신이라는 꽃이 피처럼 장렬히 질 때에도 가면을 쓰고 춤을 춰야만 하겠지요. 나의 숨과도 같은, 당신이 그토록 단 한 번만 벗어달라 청했던 이 가면도 때로는 유용하답니다. 적어도 꽃잎처럼 떨어질 내 눈물이 남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테니.

그래서 나의 에이치, 당신은.


폐하께서는 장미꽃을 닮으셨습니다.
후후, 그거 칭찬일까. 기쁜걸.
그리고 스러지는 순간마저도 그 꽃을 닮아있겠지요.


이제 말해도 되는 걸까요, 당신의 죄목은 그 숨막히는 아름다움이었노라고.
광대는 피처럼 붉은 장미꽃 한 송이를 등 뒤에서 꺼내들었다. 아이처럼 웃으며 그걸 받아드는 황제가 거기 있다. 종이 일곱 번 울었다. 종탑 위에 모여앉아있던 새들이 화르륵 날아가도록 광대의 모자 속에 얌전히 들어앉은 하얀 새는 꼼짝을 않았다. 이윽고 제 주인의 손으로 들어가더니, 새의 형상은 간데없고 아직 채 피지 못한 봉우리를 매달고 있는 장미꽃이 다발처럼 따라나왔다. 이건 친애하는 당신께. 모든 게 신기한 소년이라도 된 듯 반짝이는 눈이 파랗다. 빛보다도 빠르게 그의 숨을 앗아간 칼날 역시도 새파랬다.

광대가 모습을 감춰버린 자리에 남은 것은 피처럼 흩뿌려진 장미꽃잎과 장미꽃보다도 붉게 번져가는 황제의 피. 장미의 색인지 제 몸에서 흐르던 혈액의 색인지, 그도 아니면 이 시간에 찾아들 리 없는 석양의 색인지도 알 수 없는 색채로 차차 물들어가는 하얀 옷. 숨이 멎어가던 황제가 쥐고 있던 것은 어떤 금은보화도 아닌, 거리의 광대가 건네준 미처 못 다 핀 장미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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