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케, 하는 경쾌한 부름이 들려왔다. 바삐 재촉하던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면 이쪽을 향해 팔을 흔들어보이는 여느 때의 녀석 - 아케호시가 서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활짝 웃으면서 한달음에 뛰어와, 얼른 연습하러 가자! 며 살갑게 말을 붙여오는 통에 나도 모르게 따라서 웃고 말았다. 다음 순간, 세상이 검게 변하더니 눈앞에 서있는 건 아케호시도, '트릭스타'의 멤버들도 아닌,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남자.
자, 어떻게 할래? 선택은 네가 하는 거야. 나긋나긋하지만 어딘지 독이 서려있는 것만 같은 목소리에 절로 움츠러들며 세차게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채 말을 잇지 못하는 사이 시야는 백팔십 도를 돌아, 다시 정상 궤도를 되찾는다. 그리고 어깨 쪽에 느껴지는,
홋케! 음료수 사왔어. 연습 중에 잠들어버리면 어떡해~
히다카 군 많이 피곤했나보네.
하하, 호쿠토. 답지 않게 무슨 일이야? 이거 마시고 기운 차려.
녀석의 온도와 팔의 무게. 뒤이어 멤버들의 소란스러운 목소리와 비닐봉지 속에 든 음료수 캔이 부딪히며 내는 소음까지. 베고 잤던 팔이 저려오는 걸 여실히 느끼면서 부스스 일어난 나의 눈에 들어온 풍경은 평소 내가 알아온 그 자체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어서, 피식 웃음까지 새어버렸다. 다행이다. 무심코 그런 생각을 해버렸다. 이사라가 건네준 콜라를 마시고, 몇 번 더 합을 맞춰본 뒤에야 연습이 끝났다. 학생회 일로 바쁜 이사라와 요즘 들어 모델 일이 늘어나는 모양인 유우키가 먼저 자리를 뜨고, 연습실에는 나와 아케호시 둘만이 남아버렸다.
"정말 - 다들 바쁜 눈치라니까. 요즘은 치~쨩 부장도 없을 때가 많아서 농구부도 잠깐 쉬는 중이고…. S1이 돌아오면 좀 달라지려나. 홋케~도 바빠?"
"오늘은 연극부도 쉬는 날이니까, 같이 갈 수 있어."
"진짜지? 잘됐다! 혼자 가기 싫었는데."
네 명이서 트릭스타라는 이름으로 함께 활동하기 시작한 이래, 혼자서 하교한 적도 손에 꼽는 녀석이 방긋방긋 웃으며 내 뒤를 따라붙었다. 해가 길어졌다고는 하나 벌써 어둑해진 하늘에는 간간이 별이 떠 있었다. 눈으로 북두칠성을 좇다가, 어쩐 일인지 말없이 걷고 있는 녀석의 옆얼굴을 잠깐 바라봤다.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네가 없었다면 지금쯤 나는…
그 악몽에서 지금껏 깨어나지 못했겠지. 아니, 그 꿈이 악몽이라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했겠지. 이런 내 공상을 깨트리려는 듯이, 아케호시는 다시금 예의 사이클로 접어들었다. 홋케, 시간도 많이 안 늦었는데 별이 꽤 많이 떴어! 반짝반짝 예쁘지 - 어쩐지 오늘만큼은 바보 같은 반복이라 할지라도 발을 맞춰주고 싶어서, 잠깐 녀석의 옆에서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검푸른 융단 위로, 큐빅 다이아몬드가 박혀있는 것만 같은 모습이다. 우리는 지금 어디쯤 온 걸까. 짧은 침묵이 흐르고,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가볍게 이어지는 발소리와 함께 녀석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있지, 홋케. 나 오늘 진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뭘?"
"나랑 홋케, 웃키랑 사리까지… 이렇게 넷이서 같이 연습할 수 있어서!"
무슨 그런 당연한 말을 하냐고 되물을 수도 있었지만 선뜻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사실 너무도 먼 길을 돌아왔기에. 넷이서 비로소 마주보고 웃고 울 수 있게 된 지금이 아케호시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것이리라. 물론 그건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소중한 것, 지키고 싶었던 많은 것들을 스스로 버려버리고, 때 늦은 후회를 하던 나에게 그래도 손을 내밀어준, 미련하지만 고맙고 사랑스러운 녀석.
"새삼스럽긴,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있을 거잖아."
"응, 그렇긴 하지…. 앞으로도 잘 부탁해, 홋케."
"부탁은 오히려 이쪽에서 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래도, 홋케는 내 호쿠토(北斗)니까…?"
어쩐 일인지 제대로 내 이름을 부르며, 녀석이 고개를 젖히고는 하늘을 향해 손을 뻗더니 손끝으로 북두칠성의 모양새를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잘 봐, 저기 있는 홋케도 저렇게 빛나고 있어! 사람들에게 길을 알려주는 소중한 지표라고. 유메노사키의 홋케도 지면 안되잖아? 의기양양한 얼굴로 이쪽을 돌아보는 모습에 무심코 웃음이 터졌다. 이런 나라도 좋아해주고, 믿고 따라와주는 네가 있어서 지금의 내가 있다는 말은 언제쯤 해줄 수 있게 될까. 아직 해야 할 말이 산더미인데도 어쩐지 마음이 편안해진 게 사실이라, 부러 조금은 느린 속도로 함께 걸었다.
그래, 지지 말아야지. 아이돌로서도 패배하지 않고, 또 별(星)로서도 지지 않는 사람이 되자. 아케호시와 함께라면 그리 먼 일도 아닐 것만 같았다. 무심코 손을 넣은 교복 바지 주머니에서는 낮에 매점에서 거슬러받은 오 엔짜리 동전이 이제껏 굴러다니고 있었다.
"아케호시, 잠깐 손 줘봐."
"응? 알았어! 뭐 좋은 거라도 주려고?"
"…이거."
"와아 - 동전이다. 근데 십 엔짜리가 아니네?"
"다른 때는 그냥 동전이라도 좋아하면서 받았었잖아. 그리고 그거, 오 엔 동전이니까."
잠깐 이해하지 못했다는 얼굴로 서있는 아케호시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오(ご), 엔, 하고 다시 짚어주자 그제야 환하게 웃어보인다.
"응, 역시 그렇네. 오 엔(5円)은 인연(ご縁)의 상징이기도 하니까 - "
"이제 알아듣는 거냐. 그러니까 이건, 아케호시와 나의 인연을 상징하는 의미로 주는 거야."
"역시 홋케! 가보로 남길게!"
"잠깐, 그럴 것까지는 - "
"그럼 일단 다이키치 손이 안 닿는 곳에라도 둘게. 그럼 됐지? 다이키치 그 녀석, 요즘 내가 모아둔 동전에 관심을 보이고 있단 말이야…."
"위험한 거잖아. 내가 준 동전뿐만 아니라 집에 있는 모든 동전을 다 치워두라고!!"
"알았어, 알았어."
내 말은 듣는 건지 마는 건지 이미 저만치 앞질러가버린 아케호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마를 짚고 짧게 한숨을 토했다. 앞으로도 이런 일상이 쭈욱 계속될지도 모른다. 아니, 아마도 계속되겠지. 별 탈이 없는 한은. 하지만 늘 내 옆을 지켜주는 바보 녀석이 쭉 내 옆에 붙어있다는 건, 그만큼 나도 녀석도 변하지 않았다는 의미일 테고, 변하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힘이 되고 기쁜 일인지를 잘 알고 있는 우리라면 그게 어떤 내일이라 해도 분명 행복할 거다. 그러니까 이걸로 족했다. 그저 지금의 인연(ご縁)에 감사하면서,
"아케호시!!! 같이 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런 행복한 꿈을 그려나가면 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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