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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즈시노] 동경지화 (憧憬之話)

 

사람이 웃으면서도 울 수 있음을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중학교 3학년의 어느날, 나의 눈에 들어온 당신은 정말이지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정교하고 섬세하게 꾸며진 무대 장식, 듣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나버리는 음향. 하지만 그보다도 더 나의 눈길을 끌었던 건 단연 당신의 몸짓이었다. 고난이도의 발레 동작을 힘든 내색 없이, 여성에게도 무리일 만큼 높은 키로 노래를 부르며 선보이던 당신의 모습에 나는 그만 울컥 눈물이 났다. 그토록 반짝이는 빛으로만 보이던 당신이, 부족함이 많은 나에게도 꿈을 꿀 수 있는 힘을 준 당신이, 실은 온몸으로 울고 있었음을 깨달은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당신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마치 한몸인 양 꼭 맞아떨어지며 휘날리던 자켓을 벗고, 나의 것과는 넥타이 색을 제외하면 완전히 똑같은 교복을 입은 채 당신은 울었다. 노래하고 싶어, 마음껏 춤추고 싶어. 꿈을 꾸고 싶어.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결코 멋 모르는 풋내기들 앞에서는 울 수 없다는 듯이,

 

토모 칭, 하지메 칭, 미츠루 칭! 얘들아!

 

끝도 없이 펼쳐진 들판에 한가득 피어난 꽃처럼 환하게 웃으며 모자를 벗어 붕붕 흔들어보일 뿐이었다. 단지 내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하얀색과 파란색을 적절히 배합해 절로 상쾌한 기분마저 드는 새로운 우리의 의상을 입고 나타난 당신은 적어도 그때 내가 보았던 오르골 속에서 끝없이 턴 동작을 선보이는 무용수보다는 훨씬 행복해보였다. 그때 비로소 느꼈다. 이 사람은 살아있구나. 누구라도 뒷걸음질쳤을 게 분명한 낙양(落陽)의 순간에야 당신은 비로소 빛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가늘게,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도 분명하게 반짝거리던 당신을 나는 있는 힘껏 붙들었다. 지난날 당신이 따랐었다는 누군가를 향한 당신의 마음에 비길지 아닐지는 모르겠으나, 그 반의 반만이라도 닮고 싶었다. 빛나는 당신을 웃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도 이건, 내 문제니까. 너희들에게까지 부담을 안겨주고 싶지는 않아.

 

하루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눈높이만큼이나 마음의 키도 얼른 자라서, 우리들에게만큼은 당신이 필사적으로 숨기려 드는 그 어둠마저도 공유하고 싶었다. 매일 아침 키를 재고, 점심도 남김없이 다 먹고, 교내 아르바이트가 끝나는 대로 당신과 함께 연습을 하고, 함께 귀가하고.

 

역시 하지메 칭은 어른스럽구나. 덕분에 니쨩도 걱정이 많이 줄었는걸.

 

얼굴 가득히 내가 사랑하는 웃음을 담아보이며, 그래도 여전히 아이 다루듯 하는 손길이 내 머리 위를 가로지를 때. 방과후, 등 뒤 창가로 쏟아져들어오는 늦은 오후의 햇살을 받아 한층 눈부시게 빛나는 금발이 시야에 가득 담겼을 때. 나도 모르게 당신의 눈을 마주보며 함께 웃어버렸다.

 

도움이 될 수만 있다면, 힘 닿는 데까지 돕고 싶어요. 언제든 불러주세요, 니쨩.

설령 당신에게는 어린 아이가 손도 닿지 않을 높은 곳에 있는 걸 가져오겠다며 떼를 쓰는 모양으로 보인다 할지라도, 할 수만 있다면 정말 무엇이든 하고 싶었다. 사실은, 너무도 빠르게만 흘러가는 시곗바늘을 멈춰세우는 일이 가장 하고 싶었다.

 

나는 곧 졸업이니까그래도, 나는 믿어. 너희들은 분명 잘해낼 수 있을 거야.

 

아쉬운 눈치로 파란색 모자를 만지작대는 당신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니쨩이 떠나버리면 슬플 거라구. - 니쨩, 저는 아직도 조금 걱정돼요. 옆에서 들려오는 토모야와 미츠루의 대화에 한 마디 더 얹는 대신, 나는 머쓱하게 웃으며 한 명씩 어깨를 끌어안는 당신의 모습을 가능한 한 오래 눈에 담았다. 내가, 우리가 당신에게 아주 조금의 햇살이라도 끌어다주었다면 기쁠 텐데. 마지막이 될 무대를 마치고 내려온 백스테이지는 평소와 달리 너무도 조용해 슬픈 생각마저 들었다. 며칠 간은 방송위원으로, 또 테니스부의 일원으로 바쁘게 뛰어다니는 것밖에 볼 수 없었다. 교내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아케호시 선배와 단둘이 남아 마무리를 하고 있을 즈음, 당신이 찾아온 적이 있었다. 졸업식을 불과 일주일 앞둔 3월의 어느날이었다.

 

하지메 칭, 항상 고생하는 것 같아서. 오늘은 니쨩이 카페에서 마실 거라도 사줄게, 시간 괜찮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학교생활은 즐거워? 아르바이트는 힘들지 않고? 이런저런 물음에 신이 나서 대답하다가,

 

니쨩이 없어도 잘할 수 있지?

 

끝내 말문이 막혀버리는 바람에 투명한 유리잔의 손잡이만 하염없이 만지작거렸다. 언젠가의 당신은 나에게 유리처럼 투명하고 순수하다는 말을 해줬었는데, 그 말이 맞다면 지금 나의 마음도 훤히 비쳐보이는 걸까. 말을 하려고 고개를 들자 씩 웃으며 화제를 돌려버리는 당신이 있었다.

 

 

조금 어려운 걸 물은 것 같네, 잘하는 게 전부인 건 아닌데.”

니쨩, 저는

우리가 처음부터 잘했던 건 아니야. 그래도 우린 행복했잖아. 다 함께 장애물을 헤치고 내일을 바라보면서 나아가는 게 즐거웠던 거잖아. 그렇지?”

.”

그래, 그게 중요한 거야. 내가 있었을 때보다 더 환하게 웃으면서, 라빗츠답게 노래하면 되는 거야.”

알겠어요니쨩.”

그럼, 니쨩이 없어도열심히 할 수 있지?”

 

 

물론이에요. 맨 처음 같은 옷을 입고 만났을 때처럼 웃는 당신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리고 여전히 빛이 나는 사람이었다. 동경했어요, 나의 아이돌. 그리고 좋아했어요, 니쨩. 끝내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이었지만 이제 마냥 슬프지만도 않은 말들이었다. 당신의 앞에는, 그리고 나의 앞에는 분명 눈부시게 빛나는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 지난 날처럼 눈물만 흘리는 일은 분명 없을 테니까.

 

고마워요, 니쨩.

 

내가 건네는 꽃다발을 받아 안고는 당신이 웃었다. 고마워, 하지메 칭. 나는 그 말에 눈물짓는 대신 당신이 좋아했던 미소로 답했다. 이제 정말, 졸업.

 

우리는 처음 만났던 그 계절에 헤어졌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나무 아래에서, 언젠가 다시금 꿈()을 꽃피우리라() 약속하며. 둘도 없이 햇살이 따스한, 나의 동경도 어느샌가 만개한 어느 봄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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