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슈미카 판매전 [메인테넌스/스5] 부스에 나올 예정인 료밍 님과의 트윈지 'Bitter Sweet Angel' - 제 파트의 샘플입니다.
인형사 죽이기
이츠키 슈는 곧잘 제 방에 틀어박혀 홀로 자수를 두거나, 다음 무대에 대한 것들을 구상하곤 했다. 식사 시간이 아닐 때는 카게히라가 함께 과자라도 먹자며 소매를 잡아끌어야만 겨우 밖으로 걸음을 하던 그가, 어쩐 일인지 오늘은 괘종시계가 세 번 울리기 무섭게 제 집에 딸린 가든 테라스에 앉아있었다. 평소에는 입에 맞지 않는다며 깨작대거나 카게히라에게나 권하곤 했던 차 과자며 각설탕도 잔뜩 준비되어 있었다. 카게히라는 한걸음에 가든 테라스로 달려들었다. 여느 때처럼 가늘고 긴 손가락이 받쳐든, 금색 테가 둘러진 흰 찻잔 옆에는 이츠키가 어디를 가든 잊어버리는 일이 없는 앤티크 인형이 얌전한 자태로 앉아있다.
"스승님, 내 왔데이~ 히야, 오늘은 웬일로 티타임에 어울려주는 기가?"
"오 분 늦었구나, 카게히라. 기껏 시간을 내었더니만 마음에 차지 않기라도 하는 건가."
"응앗, 그럴 리가 있나! 스승님도 마드 누나도 억수로 보고 싶었데이! 보자, 스승님은 홍차… 내는 밀크 티, 그라모 마드 누나는…."
"마드모아젤은 차 과자로 족하다는구나. 너도 참, 이런 것을 준비했으면 미리 말해야 할 게 아니더냐. 책을 가지러 나오지 않았더라면 테이블이 세팅된 것도 모를 뻔했다는 거다."
"으응, 진즉 부를 걸 그랬나? 그래두, 내는 스승님 바쁠까봐."
"아무리 바쁘더라도 차 한 잔쯤 함께할 여유는 낼 수 있으니까 말이지."
사람뿐 아니라 상냥한 인상의 인형에게까지 인사를 건네고는, 허둥대며 제 앞에 앉기까지 이츠키는 카게히라를 그저 지켜보고만 있을 따름이었다. 한 치의 미동도 없이 찻잔을 받쳐든 채로 소년을 바라보는 모양새가, 모르는 이가 보았더라면 극도로 정교한 밀랍 인형으로라도 보였을 테다. 카게히라가 자리에 착석하고, 입이 닳도록 해왔던 충고를 따라 무릎에 냅킨을 깔고 나서야 그가 입을 열었다.
"오늘은, 다즐링인가?“
"응! 스승님은 그걸 제일 좋아하지 않나."
"…호오, 이제 제법 기억하는 폭이 넓어졌구나."
기대감에 차서 제 쪽을 건너다보는 카게히라의 시선에 이츠키는 문득 바람 새는 소리로 웃어버린다. 노란색과 푸른색의, 서로 다른 색을 가진 두 눈동자가 바라보기만 해도 상대방을 집어삼킬 듯 깊고 기묘하다. 인간에게도 저런 눈이 있었던가. 꼭 호박과 청금석을 박아 넣은 것 같다고, 처음부터 그리 생각했었다. 한참 동안이나 그 동그란, 파도치지 않는 바다를 들여다보던 이츠키가 심호흡 뒤에 말을 이었다.
"그래서, 그 이상의 할 말은?"
"응? 무슨 할 말?"
"없는 건가."
"응. 맛있게 마셔줬음 좋겠다… 그런 생각뿐이데이."
"그런가, 그렇군. 정말이지 카게히라 그 자체야."
"그라모 안 되는 기가?"
"아니, 문제없다는 게야."
사락, 소리 없이 말려 올라간 입꼬리가 기분 좋은 호선을 그린다. 카게히라 역시 웃는 얼굴로 저를 바라보고 있다. 이츠키는 손을 들어 다소 식어버린 차를 천천히 마시기 시작했다. 찻잔에 든 차를 막 저었을 때처럼, 눈앞의 풍경이 동그랗게 이울어간다. 인형 아가씨의 따스한 유리 안구도, 고심하며 골라 놓은 다과도, 미소 짓는 카게히라도…. 아득히 멀어지는 커튼 콜 요청처럼, 시야에서 사라진다. 아주 천천히. 스승님, 내 있제, 사실은…. 카게히라의 입술이 느린 화면을 보듯이 움직인다. 그 차에, 독을 탔데이. 여전히 웃는 낯으로 이츠키는 생각한다. 네 작은 머리로 생각하는 반경이란 역시 멀었구나, 다 알고 있었다는 게야. 내가 한 번 무너졌었다 한들 네 녀석의 인형사이자 최측근인 것을…. 비로소, 의식이 까맣게 저물었다. 말끔하게 비운 찻잔과 소담한 인형과 쓰러진 남자. 카게히라는 이 모든 것을 지켜볼 따름이다.
"잘 자래이, 스승님."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이지러진 목소리는 눈을 감은 이의 귓가에 와 닿기로 한다.
Fragile Heart (Subtitle : Eternal Romance)
카게히라 미카가 변하기 시작한 것은, 정확히 고등학교 3학년을 앞둔 겨울의 일이었다.
그 변화라는 것이 뚜렷한가 하면 실로 눈에도 띄지 않을 만큼 사소한 증상이었으나, 카게히라의 최측근이자 근래 들어 차츰 둘 사이의 관계를 수식하는 말이 늘어나기 시작한 이츠키 슈에게라면 잡아채지 못할 것도 없는 것이었다. 제로 콤마 단위까지 매의 눈으로 계산해, 매번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완벽한 무대를 선보이는 그라면 놀랄 일도 아니었지만. 처음으로 삐걱거리기 시작한 것은 정확히 그로부터 일주일 전의 월요일 밤이었다.
본래 Valkyrie는, 인형사와 인형의 세계를 모티프로 한 유닛이었다. 그 콘셉트의 연장선인지, 혹은 스스로의 몸 상태를 살피는 데 서툴렀던 카게히라를 위해서인지도 이제 와서는 알 길이 없었으나 두 사람은 일주일에 두 번씩 메인터넌스라는 과정을 거치곤 했다. 그마저 날씨가 차츰 쌀쌀해지기 시작한 지금에 다다라서는 아예 다른 무언가 - 이를 테면, 애정이라든가 - 가 개입할 여지가 없는 것도 아니었으나 두 사람은 극구 옛 호칭을 고집하고 있었다. 그날도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이츠키가 카게히라를 호출했지만 서로 색이 다른 두 눈동자에 떠오른 기색은 마냥 기쁘지만은 못했다. 혹여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인가 싶어 한걸음에 거리를 좁히고 안색을 살피자, 안절부절 못하며 시선을 피해버리던 모습은 지금껏 기억하고 있었다. 몸이 좋지 않다며, 열이 있는 것 같지만 약을 먹고 쉬면 나을 거다, 해열제는 집에 오는 길에 병원에 들러서 처방 받아 왔다며 두서없는 말들이 한참이나 쏟아지더니 무어라 할 말을 골랐을 즈음에는 이미 방문을 닫고 시야에서 사라져버린 뒤였다.
그로부터 벌써 일주일이다. 카게히라도 요즘 들어 제법 제 앞가림 정도는 할 줄 알게 되었거니와, 같은 반에는 좋은 학우들도 꽤 있는 모양이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새삼스럽게 여태껏 이어오던 관습을 제가 먼저 끊어낼 이츠키가 아니었다. 게다가 오늘은, 곧 있을 답례제에 이은 프롬 파티를 위한 칵테일 드레스를 볼모 아닌 볼모로 삼은 계약 상대인 나루카미로부터의 첩보도 있지 않았던가. 할로윈의 S1 이후, 한동안 무대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나 역시 제가 너무 뜸했다는 생각이 들어 이츠키는 괜히 마음 한 구석이 쿡쿡 저려왔다. 부러 수예부실에 들르지 않고 곧바로 귀가한 뒤, 평상복으로 갈아입고는 카게히라에게 줄 크루아상을 빤히 노려보며 일정 속도로 식탁을 두드리던 이츠키의 손이 도어락 열리는 소리에 문득 멎었다.
"카게히라, 늦었구나."
"응앗, 스승님아! 웬일로 일찍 왔나? 수예부실에도 없구."
"흥, 부 활동을 하지 않았으니 일찍 귀가한 것이지. 그 정도의 인과 관계도 연결하지 못하는 건가…. 뭐, 그건 되었으니 이리 와보라는 게야."
"응, 내 여기 있데이."
"오늘은 필히 메인터넌스를 해줄 테니까 말이다. 시간을 조금만 비워다오."
"응아아앗?!"
그, 내 오늘은 좀 피곤해가, 먼저 드가서 쉴게…? 카게히라는 유난히 거짓말에 서툴렀다.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닌 이츠키의 앞에서라면 더더욱. 총 천연색의 사탕을 닮은 눈동자가 한 바퀴를 데구르르 굴러, 다시금 저와 시야를 같이 한다. 들릴 리 없는 눈을 굴리는 소리조차 손에 잡힐 듯 생생하다. 이츠키는 손을 뻗어 카게히라의 어깨를 가볍게 붙들었다.
"스승님, 오늘 뭔가 이상하데이. 와 그라나."
"이상한 건 네 쪽이라는 게야. 아니, 물론 네 관리에 소홀했던 내 탓도 있지만…. 혹시 감기가 아직 다 낫지 않은 건가? 병원에는 확실히 다녀왔고?"
"…가, 감기라믄 진즉에 다 나았다 안카나!"
"흐음, 이런 문제에서 도리어 네가 완강하게 나오면 역시 뭔가 이상하다는 거다. 그럼 결론부터 이야기하지, 오늘 체육 수업에는 왜 불참할 수밖에 없었던 게야."
"응아아, 그기… 앗, 잠깐만, 스승님이 그걸 와 알고 있나!"
가지고 있던 마지막 패를 꺼내들자 카게히라는 생선이라도 훔치려다 딱 걸린 고양이마냥 파득 자기방어에 들어가 버렸다. 그마저도 아직 제 역할을 온전히 다 하기에는 부족할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나. 잔뜩 풀이 죽은 얼굴로 교복 자켓을 벗어 의자에 걸며, 카게히라가 느릿느릿 운을 떼었다.
"…알긋다. 내 멘테 해도…."
메인터넌스를 할 때면 꼭 향초를 켜두는 것은, 이츠키의 오랜 습관이었다. 최근에는 카게히라가 좋아하는 레몬그라스를 사용하기 시작한 터라 그 아이의 볼멘소리 - 대부분이 이런 대우는 익숙지 않다는 가벼운 투정이었지만 - 도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그가 메인터넌스에 필요한 준비를 마치는 동안 카게히라는 스탠드 불빛에 비친 촛불이 흔들리는 모양새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인자 말해주믄 안되나? 내가 체육 빠진 걸 우째 스승님이 알고 있는지도 궁금하구…."
"그거라면, 나루카미에게서 전해 들었다만. 자세하게 말하자면 이야기가 길어질 듯하니, 우선 신체적인 이상이 있는지부터 말해다오."
"으으, 나루 쨩이었구마. 있제, 내… 사실은."
등이… 아프데이. 시계 초침이 몇 번이고 째깍거릴 동안 마른 입술만 축이던 카게히라가 가까스로 꺼낸 말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츠키로서는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Valkyrie의 안무 중에서는 꽤나 격한 것들이 많고, 얼마 전에 마무리한 할로윈의 무대에서는 카게히라가 주연을 맡았으니까. 게다가 시즌이 아니라고 연습을 게을리 할 성격도 아니거니와, 수예부의 활동이며 아르바이트며 남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바쁘게 움직이는 카게히라를 결코 모르지 않았기에. 필시 단순한 근육통이리라. 이츠키는 안도에 가까운 한숨을 내쉬며 시야를 같게 했다.
"그런 것이었냐는 게야. 전혀 문제 될 게 없지 않느냐."
"으응…? 그런 기가?"
"물론이지. 전부 네가 노력했기에 따라오는 부산물과도 같은 것이고, 그런 유의 피로라면 충분히 쉬고 안마를 받는 것만으로도 간단히 풀릴 테다. 어차피 당분간은 무대도 없으니, 한동안 네 메인터넌스에 열중하도록 하지."
"응…. 그래두, 내 이대로 있다가는 영영 스승님 옆에서 떠나야 할지도 모르는데 괘안나?"
따스하게 카게히라의 머리 위를 가로지르던 손이 순간 뚝 멎었다. 순간적으로 스스로가 무엇을 들은 것인지 이해하지 못해 어정쩡한 자세로 굳어버린 이츠키의 손을 카게히라가 잡아당겨 붙들어왔다.
"스승님아, 내 봐도. 심각하데이."
"…아니, 카게히라. 사람은 근육통 정도로 죽지 않는다는 게야. 물론 인형이라 해도, 그 정도의 하자는 충분히 견딜 수 있고 고치는 것도 문제 없…."
"내, 날개가 자라기 시작했는데도?"
"하?"
아무래도 지금 가장 시급한 건, 카게히라의 머릿속에 과연 무엇이 들었는지 살펴보는 일인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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