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rt/슈미카 전력
[슈미카] 미완성의 밤은 길고
Rachieh
2018. 4. 29. 17:56
#슈미카_전력
28차 전력 주제 : 미완성
카게히라 미카는 무언가를 숨기는 것에 서툴다. 이를 테면 집 근처 의류 수거함에서 주워온 인형이나 만들다 만 옷 같은 것들. 눈만 봐도 알 수 있을 만큼 선연하게 드러난 마음과, 아예 숨길 생각이 없는지 반짝이며 들어올리는 눈동자와, 그 눈빛과,
그리고 눈빛이라든가.
어디에서 또 이런 것을 주워왔냐고 한 소리 내뱉는 것은 분명 기억도 하지 못할 먼 옛날에 제 손을 꼭 잡고 어른들에게서 같은 이야기를 들었을, 신경질이 묻어날 만큼 날카롭게 올라간 눈매를 치켜뜨는 벚꽃색 머리칼의 스승. 저보다 일 년 하고도 조금 더 빨리 태어난 그는, 필시 날 때는 홀로 세상에 떨어질 제가 외로울 것을 염려해서였는지, 혹은 이미 이 세상에 뿌리를 내린 누군가를 한시 바삐 만날 생각에 여념이 없어서였는지는 몰라도 머지않아 저와는 일 년 차이로 퍽 달라질 길을 걷고 있었다. 어쩌면 전자일 수도 있고 또 어쩌면 후자일지도 모른다. 한데 외로움을 달래는 건 아무리 좋게 봐주려 애를 써도 지금은 미카의 몫이니까. 있제, 스승님, 굳게 닫힌 그의 방 문 앞에 서서 그 이상 높이지도 못할 목소리를 내다가 이내 관뒀다.
문은 살짝 밀기만 해도 쉬이 열릴 것이다. 그걸 모르지는 않는다. 노란색과 푸른색의, 투명한 유리구슬 같은 두 눈에 짧게 걱정의 기색이 어렸다. 낡은 곰인형을 끌어안은 팔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언제라도 완벽한 사람, 완벽했던 무대. 눈조차 짝이 맞지 않는 자신이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부쩍 머리 위로 와닿는 손의 무게를 잊지 못한다. 성직자가 축복이라도 내리듯이 한참동안 손을 떼지 않는 그 시간은 영겁과도 같이 길어서, 심장이 뛰는 소리만으로도 온 우주를 채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초침이 온 방을 메꿀 만큼 소란하게 흘러가고, 어떤 말소리도 끼어들지 않는 순간이 지나고 나면 그의 눈동자가 이쪽을 지그시 들여다보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늘 그랬다. 처음부터 그랬다.
몇 번의 노크에도 대답 없는 이의 방 문을 열고 들어가서는, 버려진 인형들과 눈을 맞추듯 무릎을 굽힌다. 손을 뻗어 담요를 젖히는 동작은 그 언젠가 그가 저를 점검해주던 때와도 비길 만큼 조심스러웠고, 다음 순간 마주하는 것은 사람의 - 인형도 아니고, 인형사도 아니며, 신도 아닌 인간의 눈 그 자체였다. 일단은 그저 흔들릴 뿐인 보랏빛의 두 눈. 모조품인 사탕조차 입에 대지 못하고 동경해온 것은 결국 그도 저와 같은 존재임을 알았기 때문일까. 베이면 피가 흐르고, 그 근원에는 살고자 뛰고 있는 심장이 있을.
바람이 부는 밤, 창가에 양초를 켜두면 촛불은 꼭 저런 모양새로 흔들리곤 했다. 불안정하고 위태롭게, 다만 결코 꺼지지는 않는, 그런 불꽃을 본 것만 같았다. 습관처럼 세상을 발 아래 두던 그가 이제는 세상을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것처럼.
그야말로 불완전한 인간의 모습이었다. 화를 내지 않았지만 화를 낼 수 있고, 웃지 않았지만 분명 웃을 수 있고, 울고 있으면서도 틀림없이 울 수 있는. 신이 만들다 말고 지상에 던져놓은 뭇 군상들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짝이 맞지 않는 두 눈에 바람이 불었다. 다만 물러서지 않았다.
"스승님, 아직 안 잤나."
"…시간이 늦었다는 게야."
"응, 내도 안다. 시계는 충분히 읽을 수 있구."
"…."
"옆에 있어줄까?"
완벽해지고 싶다. 무턱대고 그렇게 바라던 때가 있었다. 불길해보이는 두 눈은 정열을 담아 타오르는 색으로, 제 좋을 대로 뻗친 머리칼은 가지런한 대칭으로… 하지만 그는 결국 제가 좋은 결말을 찾아 떠나가버렸으니. 완벽해진 다음은 사랑 받는 게 아니라 독립하는 것이구나. 이 사람을 홀로 두고, 갑갑한 둥지를 뒤로 한 채 떠나는 것만이 답이구나. 그렇다면 나는.
훅, 어디서 불어온 것인지 모를 밤 바람이 귓가를 스쳤다. 촛불은 꺼지지 않았고 밤은 채 반도 오지 않은 시각이었다. 말없이 옆으로 비켜앉으며 내어주는 곁은, 의외로 먼저 뻗어온 손은 생각 외로 따스했다. 여느 때처럼 머리 위에 가만히 머무르던 손이 아주 느리게 밤하늘 같은 머리칼을 쓰다듬는다. 다 저물어가는 마지막 석양의 색을 띤 눈동자가 희미하게 웃었다. 해가 뜨려면 조금 멀었지만 괜찮을지도 모른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나는 불완전한 당신의 곁에서 함께 아침을 맞고 싶으니까. 습관처럼 숨을 고르며 수없이 다치고 긁힌, 다만 여전히 강인한 두 눈을 바라본다. 그 눈 안에는 흔들림 없이 자신의 눈빛이 자리하고 있다. 대칭은 아니더라도, 완벽하지 않다 할지언정.
언제가 되든 틀림없이 기적을 일으킬 손을 내려 맞잡았다. 해를 넘겨 계절이 돌아올 무렵 다른 무엇보다도 가슴 벅찬 곡조를 써내려갈 손을 영겁처럼 붙잡아 놓지 않는다.
촛불이 흔들리며 타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