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rt

[슈미카/R18] 甘, 夏, 恋

Rachieh 2017. 8. 9. 22:15

 허구한 날 여름감기에 걸려 몇날 며칠을 앓았고, 다 나은 지금은 그에 대한 보상으로 며칠 밤을 새워가며 서로를 안고 있었다. 이제는 상인지 벌인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몸의 곳곳에서 감기로 앓을 때보다도 더한 비명을 질러대도 멈출 수가 없었다.

 이유를 묻는다면 단지 서로가 못 견디도록 좋았으니까, 정도로 짧게 답할 수 있었다. 한여름의 볕이 지상의 모든 걸 태워버리도록 들끓어도 떨어질 줄을 몰랐다. 사랑한다는 그 짧은 말을 하는 시간조차 아까워서 그토록 온 힘을 다해 체온을 나눴을까.
 직사광선 아래에서 반나절씩 서있다가 들어온 것도 아니건만 땀이 비오듯 흘렀다. 가뜩 달아오른 공간에서 아직 제 몸 안을 달구고 있는 근원인 슈를 미카는 느리게 눈을 움직여 바라봤다. 기운 없이 축 늘어져있다가도 눈이 마주치자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는다.
 채 꺼지지 못한 불씨는 부딪는 시선만으로도 도로 빠르게 타올랐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술을 겹쳤다. 미카의 위에 올라탄 채로 몸에 힘을 뺀 슈가 손을 뻗어 잔뜩 흐트러진 머리칼을 정리해줬다. 머리칼 사이를 헤집는 기분좋은 손길에 잠깐 헤실대며 웃던 미카가, 그 손을 붙들며 다시 눈을 예쁘게 휘었다. 조금 난처한 듯도 하나 사랑스러운 얼굴이었다.


"덥다, 스승님."
"안 더운 게 이상한 일 아니겠느냐."
"그래도 내는 스승님 때문에 더 덥데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날아온 일격에 얼굴이 새빨갛게 익어서는 입만 뻐끔대는 슈의 목에 별안간 미카가 팔을 감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더 덥게… 아니, 더 뜨겁게 해도."
"…카게히라."
"내는 스승님 거라믄 뭐든지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다."


 거침없는 표현에 잠깐 눈을 다른 데 두었던 그가 도로 미카와 눈을 맞추며 사악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뭔가를 계산하기라도 하는 듯 눈을 가늘게 뜨는 순간을 미카는 놓치지 않고 끌어안은 귓가에 소리죽여 속삭였다.


"다시 안고 싶제?"
"…컨디션 관리할 마음이 조금도 없는 모양이구나."
"며칠씩 잠 안 재운 스승님이 할 말은 아인 것 같은데."
"…!"


 제대로 정곡을 찔렸다는 표정으로, 그러나 결코 싫지 않은 얼굴을 한 슈가 기민한 손끝으로 미카의 몸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종전의 관계 도중 생긴 흔적들이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낮게 앓는 소리를 내다가 슈의 손이 등 한가운데에 닿자 팟하고 몸을 움츠리며 짧게 신음을 토했다. 여기였었나. 짐짓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미카가 반응했던 곳을 몇 번이고 느리게 문지르는 그에게로 원망 어린 시선이 꽂혔다. 원망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갈구에 가까웠겠지만.


"흐… 스승님, 그만, 아읏…"
"그만둬달라는 건가?"
"아니, 내, 그으…"


 그만 애태우고 얼른 안아서 데워달라는 것이겠지. 옆이 시리면 한여름에도 곧잘 추위를 타버리는 연인은 저의 체온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고 숨 쉬듯이 말했었기에. 그 솔직함이 못내 사랑스러워 탄식처럼 한숨을 내쉬고는 허리를 끌어당겨 안으며 미카의 목에 입술을 묻었다.


"그러니까, 뭘 원하는 건지 말로 해달라는 거다."
"…스승님 참말로 못됐다. 알고 있제?"
"못된 연인에게는 안기고 싶은 마음도 없겠지. 이만 씻으러 가보마."


 품에서 놓기 무섭게 도로 팔을 잡아끈다. 희게 드러난 모양새에 순간 머리가 띵하도록 열이 몰리는 걸 느꼈다. 어디 할 것 없이 뜨겁게 데워져서, 이대로 미카를 안는다면 화염에 집어삼켜질 것만 같다. 제 앞에서는 내가 나를 속이는 것조차 무리라는 걸 알고나 있을까, 이 아이는. 못 이긴 듯 도로 팔 안에 가두니 그제야 웃어보인다. 이마에 짧게 입맞추고는, 종전의 유희를 다시 시작할 준비를 했다.


"그래서, 뭘 해달라는 게야."
"…안아도."
"지금 안고 있지 않느냐."
"……들어와도."
"어딜? 그러잖아도 지금 너와 같은 방에 있다만."
"아, 스승님…!"


 장난이 지나쳤는지 울먹이기 시작한 두 눈가에 차례로 입술이 머물렀다. 마침내 맞닿은 입술 새로 미카가 사랑하는 이의 이름인지 신음인지 알 수 없는 말소리를 흘렸다. 제 허리를 휘감는 다리 사이를 파고든 슈가 한층 강하게 미카의 몸을 끌어안았다. 눈가에, 입술에, 목에 입술을 묻으며 매번 처음인 것처럼 괜찮다고 흐트러진 숨결을 다독였다.
 비로소 연결된 순간에야 참아왔던 숨을 몰아쉬며 눈을 맞췄다. 잔뜩 상기된 두 쌍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부딪히며 웃는다. 지독히도 길었던 밤이 다시 시작되려는 모양이었다.

*

 본래 사랑이란 아껴주는 것이라 했었다. 손 끝이 닿는 것조차 멀리하려 애쓰며 마음을 죽이던 나날이 있었다. 먼저 손을 뻗어 저를 허락해준 것은 누구였나. 멀리 두고 바라보는 것만이 아낌의 유일한 방식이 아님을 깨닫고 나서야 비로소 슈는 미카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었다.
 제 가슴팍에 묻은 미카의 머리를 한 손으로 끌어안은 채 결 좋은 머리칼을 손끝으로 헤집었다. 눈을 보여달라 그리 매달려도 고집스럽게도 고수하는 버릇이었다.
 제가 움직일 때마다 작게 움찔하는 모양새가 퍽 사랑스럽다. 오직 저만이 알고 있는, 가장 깊은 곳에 자리를 잡자 기다렸다는 듯 터져나오는 교성에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몇 번이고 그만둘 수 없게끔 하는 둘만의 유희는 늘 그랬듯 치명적으로 달았다. 찌푸리다가도 마주치는 순간 휘어지는 눈꼬리가, 제게 온 힘을 실어 매달려오는 마른 몸이, 숨소리가, 그 모든 것이 있는 힘껏 깨물고 싶도록 못내 달다. 그 틈새로 빠져나가는 숨조차 아까움에 이어진 채로 몇 번씩 입술을 겹쳤다. 다만 이 순간 제일 듣고 싶은 걸 듣지 못한다는 게 아쉬울 뿐.


"카게히라, 목소리."
"…으응…"
"…듣고 싶다는 게야."


 와중에도 아래로는 쉴 새 없이 밀어붙이는 통에, 말문이 막혀 난처한 듯 눈을 이리저리 굴리던 미카가 스승니임, 말꼬리를 늘이며 팔을 뻗어 목을 끌어안아왔다. 좋아한데이. 모처럼 또렷하게 전해진 한 마디에, 다시금 일격이라도 당한 듯 잠깐동안 어디에도 내려앉지 못하고 헤매던 보랏빛 시선의 주인이 그 어느 때보다도 기쁜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그것뿐인가."
"…당연히, 아이제."
"그럼,"
"사랑한다."

 초콜릿을 녹여 이룬 밤의 강을 어느 영화에 나왔던 것처럼 설탕으로 된 배를 타고 건넜다. 이 밤이 마지막이라도 되는 것처럼 서로의 품에서 불꽃으로 화하는 연인들이 거기 있다. 길고도 달콤한 여름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