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rt/슈미카 전력
[슈미카] Dear Daily
Rachieh
2017. 5. 14. 15:37
#슈미카_전력
3차 전력 주제 : 사탕
스승님, 내 메인테넌스 좀 해도…. 모처럼만의 휴일이라 부러 깨우지 않았더니만 해가 중천에 걸릴 즈음에야 아래층으로 내려온 미카의 첫 마디였다. 거실 테이블에서 의상 도안을 그리던 슈가 마뜩찮은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이제 일어난 것이냐."
"…으응…."
"정말이지, 깨우지 않으면 자력으로는 일어날 수도 없는 건가. 아침을 거르면 균형이 무너진다는 거다. 한 번 정도야 괜찮겠지만, 너는 평소에도 영양 상태가 썩 좋지 않으니까 말이지."
"내도 안다… 그니께 메인테넌스 좀 해도."
말로는 알겠다면서 하나도 알아듣지 못한 모양이다. 역시 깨워서 뭐라도 먹일 걸 그랬나, 미카를 가만히 바라보던 슈가 이쪽으로 오라며 손짓하자 쪼르르 달려온다. 일어나자마자 저렇게나 메인테넌스를 조를 만한 마땅한 사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요즘은 매일, 적어도 이틀에 한 번씩은 주기적으로 상태를 체크하고 있었는데. 어젯밤에도 별다른 증상이랄 건 없었고. 조금 의아한 얼굴로 저를 향해 뻗던 손을 미카가 빠르게 잡아채 이마로 가져갔다.
"…카게히라?"
"내 여기 쪼까 뜨겁지 않나? 으으… 아침에 일어났드니 으슬으슬 추운디 머리는 뜨거워가 내 죽는 거 아닌가 싶었데이…."
"'좀'이 아니질 않느냐! 네 녀석은 열이 오르는 줄도 모르고… 아니다, 어쩐지 무리해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싶던 걸 가만 놔둔 내 책임이다."
한 번에 많은 양의 말이 쏟아지자 그 중 하나라도 제대로 이해하려 고심하는 찰나, 슈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저기 있는 찬장에서 해열제를… 아니, 그냥 내가 가져오마. 제가 더 급한 눈치로 미카를 밀치듯이 앞지른 슈가 금세 약병을 들고 돌아왔다. 그 손에 든 걸 확인하자 힘없이 소파에 앉아있던 미카의 표정이 무참히 구겨져버렸다.
"이거 윽수로 쓴 거 아이가…."
"전부 네가 자초한 일이다. 크로와상을 데워올 테니 여기서 잠자코 기다리도록."
"스승님, 그냥 멘테로 때워주믄 안 되나…?"
"약을 먹어야 감기가 나을 게 아니냐. 메인테넌스는 그때 가서 생각해보겠다는 것이야."
뒷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지 입이 댓 발은 나온 채로 테이블 아래 내려놓은 손만 하염없이 꼼지락댄다. 내내 곁눈질로 눈치를 살피다가 슈가 등을 보이기 무섭게 테이블에 놓인 과자 그릇을 향해 손을 뻗었다. 평소 식사 대용으로도 삼을 만큼 좋아하지만 점심 대신 먹다가 슈에게 한 번 들켜버린 뒤로는 손도 대지 못했던 사탕이 종류별로 담겨있다. 뒤돌아있으면서 어떻게 알았는지 카게히라, 하는 불호령이 떨어지자 미카는 재빨리 손을 거뒀다. 스승님은 등 뒤에도 눈이 달렸나, 속으로 조금 구시렁대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미카의 앞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크로와상이 한가득 담긴 접시가 놓였다. 평상시였더라면 식탁이 아닌 다른 곳에서의 식사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을 테지만, 오늘은 예외적으로 미카가 감기에 걸려버렸으니까. 기껏 철칙을 깨고 코앞까지 접시를 가져다준 이쪽의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약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내내 뾰루퉁해있는 미카에게 빵을 반으로 잘라 좀 더 큰 부분을 내밀었다.
"먹거라."
"…응아? 응… 고맙데이."
"우유도 데워왔으니까, 체하지 않게 천천히 먹도록."
"…으응…."
혼자서도 먹을 수 있는데, 다 먹을 때까지 지키고 앉았을 심산인지 부동자세로 앉아있는 슈를 바라보며 미카는 느리게 크로와상을 먹었다. 간간이 묵언의 위협에 못 이겨 우유도 마셔가면서. 이걸 다 먹으면 약 먹어야 할 텐데, 하는 생각에 최대한 천천히 먹으려고 애썼지만 그토록 좋아하는 슈의 수제 크로와상이었다. 게다가 오후가 다 되도록 물 한 모금 안 마셨고. 말끔히 그릇을 비우고 컵까지 비워내자 슈는 그제야 만족한 표정으로 그릇을 설거지통에 담가두고 왔다.
"맛난 거 묵었드니 졸리다 안카나…. 스승님, 내 올라가서 한숨만 더 자고 올…"
"어딜 빠져나가려고. 이리 오거라, 카게히라."
처음부터 빠져나갈 수 있을 거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았던 게 사실이지만 너무도 빠르게 덜미를 잡혀버렸다. 거의 울상이 되어 뒤를 돌아보자 언제 물까지 데워왔는지 김이 서린 유리잔을 들고 있는 슈가 보였다. 속으로 한숨을 내쉰 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그가 건네주는 해열제를 물과 함께 넘겼다. 아, 쓰다.
"기왕 약 줄 거믄 달달한 거로 주지…."
"그건 영유아들이나 먹는 거다. 네가 몇 살인 줄 알고 어리광을 피우는 게야."
"그캐도 쓴 건 싫다 아이가."
"애초에 무리해서 돌아다닐 때부터 알아봤다는 것이야… 내 참."
이제야 여유가 생겨 찬찬히 미카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고작 하루 앓았을 뿐인데 어쩐지 이전보다도 더 살이 마른 것 같아 슈는 낮게 앓는 소리를 냈다. 좀 더 확실히 영양보충을 해주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았다. 근래들어 외부로부터의 의상 수주가 늘어서 미카에게 쏟을 정신이 없었던 건 사실이나 이렇게 금방 겉으로 드러날 줄이야. 요즈음 인형사로부터 줄곧 달콤한 말만 듣고, 사랑만 받아온 인형은 이렇듯 조금만 눈을 돌려도 금세 티를 내왔다. 저를 조금만 더 바라봐달라고, 안아달라고 보채기라도 하듯.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열로 조금 달뜬 미카의 얼굴에 머물던 슈의 시선이 차츰 누그러졌다. 미카가 아르바이트를 늘린 것도 따지고 보면 다 제 탓이다. 원래 슈로부터의 지시가 없을 때 더 불안해하며 동으로 서로 발품을 팔던 아이였으니. 감기가 낫더라도 당분간은 제대로 쉬게 해줘야겠다고 생각하며 마지못한 듯 두 팔을 벌렸다. 행동의 의미를 곧바로 알아채지 못해 멀뚱하게 서있던 미카가 이내 환하게 웃으며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안겼다.
"카게히라."
"으응?"
"당분간 아르바이트는 없다. 통보야."
"그래도…"
"이번에는 외부 수주였으니 순수익이 꽤 들어왔다는 거다. 이제 네가 발로 뛰지 않아도 돼. 뭐, 원래부터도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만."
"으응… 스승님이 그렇다믄 그런 거겠제."
"말의 요지를 잡도록. 그러니까 당분간 쉬라는 말이었다."
스승님이 그러라믄 그래야제, 별 수 있나…. 아까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반응에 이쯤 되면 정말 제가 좋아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건 아닐까 싶다가, 이럴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미카를 조심히 품에서 떼어냈다. 올려다보는 눈빛에 잠이 가득하다.
"감기약을 먹었으니 잠이 올 게다. 올라가서 한숨 자도록."
"…스승님."
"응? 왜 그러지."
"있제, 내…"
더 이상 말은 잇지 않았지만 정황상 미루어보건대 혼자 자기 싫다 - 든가, 옆에 있어주면 안 되냐는 식의 말이 나올 것 같았다. 그런 게 뭐 그리 어려울까 싶어 미카가 뭐라 입을 떼기도 전에 손을 뻗어 머리칼을 살짝 쓰다듬으며 같이 올라가자꾸나, 하고 운을 떼자 조금 의아한 시선이 뒤따랐다.
"…? 아니, 내 있제. 사탕 하나만 묵어도 되냐꼬…"
"…."
"그 말 할라캤는디."
"…카게히라."
"아무래도 입이 쓰다 안카나… 안 되나?"
"먹거라."
제 마음은 하나도 모르는 주제에, 여전히 티없이 해맑게 웃어보이는 얼굴에 역으로 한숨이 나왔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허락해주자 미카는 세상을 다 얻은 듯한 표정으로 과자 그릇을 들고 달려왔다. 스승님도 하나 묵을래? 늘 그랬듯 저에게도 권해오는 아이에게 늘 그랬듯 필요 없다며 딱 자르자 금세 다시 풀이 죽는다. 윽수 맛난디, 달달하구. 입 안에서 사탕을 굴리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통에, 먹으면서 말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한 마디 해줬지만 곧이 들릴 리 만무했다. 빨간색 사탕을 집는 것 같더니만 달콤한 체리향이 맴도는 것 같았다. 색색깔의 사탕이 담긴 그릇으로 자꾸만 눈이 갔으나 이제 와서 집어먹기도 묘하게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 오물거리며 사탕을 녹여먹는 미카를 조금 비딱하게 바라보고만 있었다.
"헤에, 먹는 것까지 기다려줄 필요는 읎었는디. 그래도 고맙데이, 스승님~"
"…누, 누가 기다렸다는 게냐."
"그래도 내 이거 다 먹을 때까지 지켜봐줬구…? 맞다, 내 잘 때도 옆에 있어준다캤는데. 맞제?"
악의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물음이었다. 이미 빠져나갈 구실도 없이 묶여버렸다. 이유도 모른 채 달아오르는 얼굴을 애써 무시하며 얼른 방으로 들어가라고 짐짓 엄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어차피 미카에게는 이도 들어가지 않을 것이 뻔했지만. 계단을 걸어올라가는 뒷모습에 괜한 노파심이 일어 조심히 올라가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잠들 때까지만이라도 옆에 있어줘야겠다는 생각에 그 뒤를 따르려는 찰나, 어쩐 일인지 마지막으로 사다준 지 한 달도 넘었건만 거의 줄지 않은 사탕이 눈에 들어왔다. 제대로 된 식사도 건너뛰고 주식으로 삼아버리는 바람에 한 번 금지령을 내린 적이 있긴 했지만, 아예 먹지 말라고 한 기억은 없었던 것 같은데. 상황이 상황인 만큼 조금 어리광도 받아줄까 싶어 그릇에서 사탕을 한 줌 크게 집어 위층으로 가져갔다. 아니나다를까 이미 잠들어있다. 의자에 걸터앉으며 가져왔던 사탕은 책상 위에 부려놓았다. 손을 뻗어 깨지 않을 정도로만 살짝 이마를 짚어보았다. 자는 동안 열이 다 떨어져야 할 텐데, 자고 일어나면 제대로 밥을 먹이고… 부득불 메인테넌스를 조를지도 모르니 그것도 일단 해주기로 하자.
저 때문에 복잡한 속은 아는지 모르는지 고요히 잠들어있는 미카의 얼굴을 잠깐 바라보다가, 설핏 찡그려진 미간을 손으로 살살 문질러 펴주었다. 얼핏 잠꼬대로 자신을 찾는 듯도 했으나 아무렇지 않은 척 넘겨버린 슈가 갖가지 색깔로 포장된 사탕을 뒤적이다가 아까 미카가 골랐던 것과 같은 색을 하나 집어먹었다. 단 걸 싫어한다며 딱 자르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종래에는 조금 미소까지 띄우고 있었다. 평소답지 않게 마음이 약해지기라도 한 것일까. 뒤늦게 정신이 들어 무심코 다시 사탕을 향해 뻗던 손을 멈췄다. 남은 건 깨어나거든 먹으라고 해야겠다. 어느새 방 안에서는 미카의 조금 빠른 숨소리만이 들려왔다. 머리칼을 조심스레 쓸어넘기며 반듯한 이마에 짧게 입을 맞췄다. 할 일이 조금 남아있었으나 어느 정도는 미뤄도 되겠지 싶은 생각에 아예 눌러앉을 요량으로 무릎담요까지 가져왔다. 원래부터라도 혼자 잠드는 걸 썩 좋아하지 않는 아이였으니 깨어나서 옆에 제가 있는 걸 본다면 필시 기뻐하리라. 아침부터 백방으로 미카를 챙기느라 바빴던 탓인지 눈을 감으니 절로 졸음이 밀려왔다. 잠깐 눈이라도 붙여야겠다. 창문으로는 한낮의 햇살이 나른하게 쏟아져들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