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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rt/슈미카 전력

[슈미카] Summertime

 #슈미카_전력

10차 전력 주제 : 바다

 너, 계속 그렇게 죽은 듯이 방 안에만 처박혀있으면 먼지 쌓인다.

 키류의 말에 들은 체 만 체 코웃음을 쳤었지만, 어느 틈엔가 손목을 붙들려 여기까지 와있었다. 그러니까, 바닷가에. 사람이 많은 곳은 질색이라고 몇 번이고 말했건만. 이제는 그의 앞에서 방패막이로 삼을 인형도 없다. 비척비척 차에서 내리는 슈에게 키류의 체념에 가까운 시선이 날아와 꽂혔다. 물에 들어가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까 그냥 구경이나 하다 가라는 말에도 현기증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뭐, 어떻게 해줄까. 파라솔이라도 빌려와?"
 "…아니, 그런 건 됐다는 게야."
 "…."
 "정 그렇게 소원이라면, 잠깐 앉아있다 가주지."


 선심 쓰는 투로 말하자 피식, 바람 새는 소리로 웃는 키류의 얼굴에 그늘이 져있다. 누굴 생각해서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아무래도 이번에는 내가 저 녀석의 역린을 건드린 모양이다. 음료수라도 사올 테니 쓰러지지나 말라고, 한 마디를 남겨놓고 자리를 떴다. 슈는 뒤늦게 고개를 들어 키류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았다. 인파 틈새로 금세 사라져버리는 그 모습에, 저도 모르게 바닥에 풀썩 주저앉아버렸다.

 이 바다에 와보는 것은 꼭 세 번째였다. 가장 처음에는 그 아이와 함께였고, 두 번째는 어리석게도 죽기 위해 왔었다. 그 아이를 놓지 못해서, 숨 같은 그 작은 존재를 잃지 못해서. 그리 쉽게 끊어질 명줄이었더라면 지난날 무너진 세계의 잔해 속에서 함께 눈을 감았어야 했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누군가가 끊어진 줄만 알았던 자신의 실을 붙들어준 덕택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슈는 깨달았다. 이제는 그 아이가 없구나. 나를 붙잡아줄 사람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 죽음과도 같은 외로움이었다. 혼자 쓰는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며칠간 악몽에 시달렸다. 바다가 저를 끌어들이는, 심해로 자꾸만 빨려들어가는 꿈이었다. 저의 친우가 그토록 사랑하는 바다와는 또 다른, 어둡고 깊은, 숨막히는 해저.

 가라앉으면서도 그 아이가 보였다. 웃고 있는 카게히라 미카, 무대에서 노래하던 카게히라 미카, 사랑한다는 말에 세상을 다 가진 얼굴로 제게 안겨오던 카게히라 미카, 끝을 고하는 말에 차라리 죽음을 달라며 울부짖던 카게히라 미카. 차라리 같이 갈까, 같이 죽어버릴까. 그럼 네가 그토록 노래를 부르던 지옥이라는 곳에 함께 떨어질 수 있을까. 너의 세계는 정말 나 하나가 사라짐으로 인해 아무렇지 않게 종말을 고해도 되는 그런 가벼운 것이었던가. 끝내 그 말은 하지 못했다. 내가 가려는 곳은 지옥도 연옥도 아닌, 그저 네가 없는 세상이었을 뿐이었는데. 그저 영원히 격리되어있을 뿐인, 어쩌다 가끔 마주친다 하더라도 무의미한 눈인사가 전부여야만 하는. 나에게 그런 세상이 산지옥이었듯 너에게 내가 했던 말 하나하나가 비수가 되어 지난날 내가 만들었던 상처를 도로 헤집었으리라 생각하니 차라리, 정말로, 죽어버리고만 싶었다. 다만 네가 다치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기에. 그동안은 학업 때문에 봐줬다손 치더라도, 아무런 매일 게 없어진 지금까지도 손에서 놓지 못한다면, 그 아이가 어찌 될지 역시도 장담할 수 없다는 말에 화조차 내지 못했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 의해, 이츠키 슈가 아닌 다른 사람의 손에 네가 망가지는 걸 두고 볼 바에는 내 선에서 끝내고 싶었을 뿐이다. 그 시절 숨 쉬듯이 아이의 앞에서 지었던 표정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서늘한 얼굴로 끝을 고했다. 나는 나의 세상에서 살아가야 한다고, 너와 내가 언제까지 같은 지평에서 숨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느냐고. 이제는 다른 길을, 다른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고. 어쩌면 모든 것은 이미 예정되어있었는지도 몰랐다. 예술관을 펼치고 싶어 아이돌이 되었고, 정말로 끝인가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그 아이의 하나뿐인 등대가 바로 자신이었음을 깨닫자 멈출 수가 없었다. 그의 무대는 이미 프로들이 모인 연예계에서도 호평이 자자했지만 단 하나, 집안에서만큼은 이제껏 제 손으로 쌓아올린 세계를 한갓 모래성쯤으로 치부해왔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그저 조금만 더 무대 위에서, 미카와 함께 머무르고 싶어 줄곧 모른 체해왔을 뿐.

 모래 위의 성이 다시금 무너져내렸다. 이제 제왕도 프로 아이돌도, 그 무엇도 아니다. 하다 못해 그 작은 아이의 스승도 아니었다. 이츠키 슈로서, 아니, 이츠키 가의 후계자로서 살아가야만 했다. 그토록 증오하는 텐쇼인이, 내지는 피네의 귀여운 얼굴이 인상적이던 그 아이가 살아가는 세계에 저도 발을 내딛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들에 비해 서있는 위치는 조금 낮다 할지라도. 연예계 최정상의 주가를 달리던 발키리의 리더가 별안간 활동 중지를 선언했고, 자연스러운 결과인 것처럼 둘만의 그룹은 해체되었다. 다만 미카만큼은 여전히 홀로 활동을 이어가는 중이었다. 내렸던 막이 다시 올라간 지금, 두 사람이 서있던 무대는 온전히 미카만의 것이 되어있었다. 인형이라는 이름도 무색할 만큼 반짝이며 피어난 그 아이의. 이제 둘만의 세계는 어디에도 없다. 필름 속에만, 인터넷을 떠도는 영상 속에만 존재할 것이며 그 또한 언젠가는 모두에게서 잊혀지겠지. 카게히라 미카만의 발키리, 라고 회자될 날도 그리 머지 않을 것이다.

 그럼, 자신은?
 그 아이의 동료이자, 한때는 세계를 실 하나로도 조종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자신은 이렇게 불이 꺼진 무대 뒤편으로 사라지고 마는 것인가. 있는 힘껏 발악해서라도 바꾸고만 싶은 현실이었으나 별달리 수가 없었다. 제 이(二) 막이 시작되었다. 주인공이 아닌 사람은 뒤로 빠질 시간이다. 언제든 돌아와도 된다고, 저를 위한 자리는 언제든 비어있다 말해주던 미카에게 끝내 어떠한 답도 내려주지 못했다.


- 이제, 네가 무대의 주인공이다. 카게히라.
- 스승님.
- …말하지 않았었나, 너는 훌륭한 인형사라는 게야. 원한다면 다른 멤버를 영입해도 괜찮다. 물론 내 허락 같은 건 받지 않아도 돼.
- ….
- 이제, 나는 그저 제 삼 자일 뿐이니. 관객석에서, 지켜보마.
- ….
- 언제가 되든, 다시 만난다면… 그때는 네가 웃는 얼굴이었으면 좋겠구나.


 먼저 손을 내민 것도 자신이었고, 먼저 그 손을 놓은 것도 자신이었다. 차마 한 번 더 뒤를 돌아볼 자신도 없이 그렇게 미카의 곁을 떠나온 지도 어느새 반 년이 다 되어갔다. 저의 발키리를, 저의 카게히라를, 저의 세계를 손에서 놓은 지가. 헤어진 뒤로는 부러 미카의 활동 영상과 근황도 멀리했으니 체감으로는 훨씬 오래된 것만 같았다. 그 사이 집안에서는 선자리를 마련한다, 비슷한 위치에 있는 후계자들과 얼굴을 익히게 한다며 온갖 성가신 자리에 그를 끌고 다녔고 매번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온 슈를 위로해주는 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그 텐쇼인에게 동정심이 일었다. 이런 걸 매번, 그것도 자신보다 훨씬 긴 시간동안 견뎌냈을 그도 보통은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외롭다.
 그리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때보다도 더 깊은 심연을 스스로의 안에 만들어놓고, 점점 그 안으로만 파고들어가던 슈를 억지로나마 끌고 나온 건 다름아닌 키류였다. 집에서는 여전히 외부인을 만나는 것도 경계하는 눈치였으나, 단 한 사람, 키류만큼은 예외였기에.
 어이, 이츠키. 나 왔어. 공상을 깨트리는 저음에 슈가 느리게 고개를 들었다. 이온음료를 내밀기에 고맙다고 짧게 인사하며 받아들었다.


 "여기 별로려나? 성수기에도 그나마 사람들 없대서 골랐는데."
 "…나쁘지는 않다는 게야."
 "마실 거 뽑아온 사이에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길래. 여기라면 그 녀석도 좋아할 것 같아서 한 번은 추천해주고 싶었는데,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냐."


 …그러잖아도 이미 한 번 왔다 갔었다, 그 아이와. 그가 건네준 캔을 손 안에서 굴리다가 캔 뚜껑을 따며 숨 쉬듯이 내뱉은 한 마디에 키류는 안타까운 눈으로 소꿉친구의 옆모습을 바라볼 따름이었다. 아마 그는 영영 모르겠지만.


 "네 발키리는 아직 건재해."
 "내 발키리 같은 건 이제 없다고 몇 번 말해야 알아들을 셈이지."
 "그래, 그럼… 네 사람이 있는 발키리는 아직 건재해."
 "…."
 "보고 싶지 않아?"


 하루에도 몇 번씩 손이 기억하는 그 번호를 누르려다 말고, 검색창에 그 이름을 치려다 말고, 화면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없이 눈부시게 빛나는 그 아이를 잠깐이나마 눈에 담으려다 말고. 혼자 있게 해다오. 기나긴 침묵 끝에 겨우 내뱉은 슈의 한 마디는 눈물도 아니고 흉터도 아니었다. 흉터도 되지 못한 채 여전히 피를 흘리는 상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어깨를 두드리고 멀어져가는 손길이 따스하다. 이츠키 슈는 백사장 한가운데에서 힘없이 무너져내렸다.


 "…스승님?"


 차라리 기억 속의 환청과도 같은 그 목소리가 들려올 때까지. 슈는 무릎을 세워 끌어안은 채 그 틈새로 잔뜩 파묻고 있던 고개를 천천히 들어올렸다. 의심 반, 확신 반인 음성이, 모래를 밟을 때의 발소리가 차츰 가까워져왔다. 영원 같은 찰나가 흘렀다. 이윽고, 파도가 밀려가는 소리밖에 남지 않았을 때.


 "…내, 맞게 봤네."


 안도한 듯 웃어보이는 이색의 눈동자와 마주했다. 머리가 약간 길었다는 걸 빼면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슈가 느리게 자리에서 일어나, 마침내 시야가 비슷해진 뒤에도 한참동안 그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목소리를 내었다가는 모래 위에 쌓아둔 성처럼, 입 밖으로 새어나온 말의 조각들마저 밀물에 쓸려가버릴까봐 두려웠던 것일까. 정작 물살이 더욱 갈라놓기 쉬운 것은 둘 사이의 침묵이었는데도. 다음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을 열었고, 당연한 듯이 부른 것은 서로의 이름.


 "…먼저 말하거라."
 "보고 싶었데이."
 "…."
 "내 보러 온다캐놓고, 오지도 않고…."


 내가 아직 발키리의 이름에 완벽하게 걸맞지 않아가, 그래가 스승님이 내 보기 싫어하는 줄 알았다. 내는 스승님 오믄 보여주고 싶어가 매일매일 연습도 엄청 열심히 하고… 간신히 눈물을 참는 게 역력히 드러나는 얼굴로 미카는 말했다. 결국에는 보고 싶었다는 단 한 마디로 귀결되는 말이었다.
 당신이 보고 싶었어. 내가 이렇게 빛난다는 걸,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었어.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여버리는 미카를 힘껏 끌어안았다. 분명 고맙다는 말이 해주고 싶었을 텐데 자꾸만 미안하다는 말이 앞섰다. 함께해주지 못해서, 지켜봐주지 못해서, 같은 무대에 서지 못해서, 함께 노래하지 못해서,

 너를 놓아버려서 미안하다고.

 때를 모르는 눈물이 앞을 가리려 드는 통에 몇 번이고 하늘을 바라봐야만 했다. 파도가 몇 번씩 더 울렁이며 지나가도록 슈에게 안긴 미카는 말이 없었다. 한참 꼿꼿이 등을 세우고 있다가 이내 긴장이 풀린 듯 몸에 힘을 빼며 가만히 안겨오는 모양새에, 끌어안은 팔에 자꾸만 힘을 실으며 한참을 그렇게 서있었다. 하얗고 푸른 풍경의 한가운데에서, 멈춰있던 시곗바늘이 비로소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함께했던 그 여름으로, 함께 눈에 담았던 그 바다로. 주위의 모든 것이 되감길 동안 두 연인만큼은 변하지도 흔들리지도 않는다. 일 년의 시간을 보란 듯이 뛰어넘어 맨 처음 이곳에 오던 날을 맞고, 아름다웠던 시간이 손끝에 잡히도록.

 눈앞에 펼쳐진 것은 경계를 알 수 없는 바다와 하늘. 나란히 채워나갈 시간들로, 다시금 두 사람의 시계 위에 빼곡히 글자가 새겨졌다. 올 여름은 그 해를 닮을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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